고양이 한 마리가 아이들의 상상력을 이렇게까지 넓혀줄 수 있다는 걸, 직접 교실에서 겪어보기 전까지는 몰랐습니다. 현덕 글, 이형진 그림의 그림책 '고양이'(길벗어린이)는 장난감 없이 몸으로 노는 시대의 놀이 문화를 담은 몸 놀이 그림책입니다. 처음 이 책을 아이들과 펼쳤을 때, 저는 그저 조용히 읽어줄 생각이었는데 그날 교실은 야옹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고양이 그림책 놀이, 그림책으로 시작하는 동물 역할놀이
그림책 '고양이'의 주인공 노마는 고양이의 특징을 몸으로 따라 하며 친구들과 놀이를 이어갑니다. 걷는 방식, 울음소리, 웅크리는 자세까지. 이 책이 단순한 이야기책이 아니라 몸 놀이 그림책으로 분류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몸 놀이 그림책이란, 신체 동작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고 표현하도록 유도하는 그림책 장르를 의미합니다.
제가 직접 이 책을 활용해 역할놀이를 진행해 보니, 아이들의 반응이 예상보다 훨씬 적극적이었습니다. "고양이가 되어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라고 물었을 때, 어떤 아이는 바닥을 살금살금 기어 다니며 졸린 고양이를 표현했고, 또 다른 아이는 종이공을 앞발로 툭툭 치는 장난꾸러기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같은 동물을 주제로 했는데 아이마다 전혀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처럼 동물 역할놀이는 유아교육에서 사회극 놀이(Sociodramatic Play)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사회극 놀이란 아이들이 역할을 맡아 상황을 연출하고 상호작용하는 놀이 방식으로, 언어 발달과 정서 조절 능력을 동시에 자극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저도 교실에서 아이들이 서로 "내가 엄마 고양이야", "나는 아기 고양이야"라며 관계를 설정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역할놀이 이후에는 털실공이나 빈 종이 상자로 고양이 놀이 공간을 꾸며주었는데, 이 환경 구성 하나가 놀이의 몰입도를 크게 끌어올렸습니다. 그때 느낀 건, 그림책이 놀이의 출발점이 되면 아이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확장해 나간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림책을 활용한 역할놀이의 핵심 효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관찰력: 동물의 특징을 직접 몸으로 탐색하며 세밀한 관찰이 이루어집니다.
- 공감 능력: 동물의 감정과 행동을 상상하면서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연습이 됩니다.
- 언어 표현력: 역할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휘와 문장을 구사하게 됩니다.
- 창의적 사고: 같은 동물이라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표현하면서 창의성이 발휘됩니다.
실제로 유아기 신체 표현 활동이 사회정서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교육 현장에서 꾸준히 확인되고 있으며, 교육부에서도 누리과정의 신체 운동·건강 영역과 예술 경험 영역에서 몸 표현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출처: 교육부).
종이로 만드는 고양이 스퀴시, 미술 활동으로 연결하기
그림책 놀이를 마친 뒤 이어진 미술 활동으로는 고양이 얼굴을 활용한 스퀴시 만들기를 해볼 수 있습니다. 스퀴시(Squishy)란 말랑말랑하게 쥐었다 펴지는 촉감 놀이 장난감을 일컫는 말로, 아이들이 손으로 직접 쥐고 누르며 촉각을 자극하는 감각 놀이 도구입니다.
만드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A4 용지를 길게 반으로 잘라 고양이 얼굴을 그린 뒤, 원기둥 형태로 말아서 위아래를 막고 안에 솜을 채워 넣으면 완성됩니다. 제가 처음 이 방식을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종이로 스퀴시를 만들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신선했거든요.
실제로 아이들과 해보니 몇 가지 팁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양이 얼굴은 종이 정가운데에 그려야 나중에 원기둥으로 말았을 때 그림이 틀어지지 않고 깔끔하게 완성됩니다. 마카펜으로 색을 칠할 때는 검정 테두리를 나중에 그려야 번짐을 줄일 수 있습니다. 노란색 바탕을 먼저 칠하고 그 위에 검정 선을 얹는 순서로 진행하는 것이 훨씬 깔끔한 결과물을 만들어줍니다.
이 미술 활동에서 핵심이 되는 개념은 촉각 자극(Tactile Stimulation)입니다. 촉각 자극이란 피부의 감각 수용체를 통해 질감, 압력, 온도 등을 느끼는 감각 경험을 말하며, 유아기에 다양한 촉각 자극을 경험하는 것이 신경계 발달과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솜이 들어간 스퀴시를 손으로 꾹 눌렀다 놓는 행동이 단순한 장난감 놀이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손의 소근육(Fine Motor Skills) 발달을 자극하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소근육이란 손가락, 손목 등 작은 근육군의 움직임을 말하며, 쓰기와 그리기 같은 정교한 작업의 기초가 됩니다.
제 경험상 이 활동이 특히 좋았던 이유는, 아이들이 직접 만든 스퀴시로 다시 고양이 역할놀이를 이어갔다는 점입니다. 손에 쥔 고양이 스퀴시를 보여주며 "제 고양이는 엄청 말랑해요"라고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며, 그림책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만들기 활동을 거쳐 다시 놀이로 순환된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한국아동학회에 따르면 유아기의 통합적 놀이 경험, 즉 이야기 읽기와 신체 표현, 미술 활동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학습 환경이 인지 발달과 창의성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아동학회).
그림책 한 권이 역할놀이가 되고, 역할놀이가 미술 활동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물이 다시 놀이 도구가 되는 과정을 교실에서 직접 겪어보면 책이 단순한 읽기 자료 이상이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고양이처럼 친숙하고 표현이 풍부한 소재일수록 이 순환이 더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아이와 그림책 놀이를 처음 시작하는 분이라면 '고양이'처럼 몸으로 따라 할 수 있는 책부터 골라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아이가 책을 덮은 뒤에도 한참 동안 고양이로 살고 있을지 모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_HWjoyKzWLs&list=PL8WrQ8pZVX9gJMZCq4CeQU7YN2jjy1Tk5&index=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