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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이 사는 나라' 그림책 놀이 (장치, 확장)

by seulki87 2026. 4. 26.

저자 모리스 샌닥, 번역 강무홍, 출판시 공주니어, 발행2017.03.30.

 

아이가 화가 나서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간 뒤 한동안 나오지 않을 때, 어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그런 장면을 교실에서 여러 번 봤는데,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서 그 막막함이 조금은 풀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그림책 하나가 아이들의 감정 표현과 상상력을 어떻게 끌어내는지, 실제로 써봤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 그림책 놀이, 그림책이 품고 있는 장치들

 

『괴물들이 사는 나라』(원제: Where the Wild Things Are)는 모리스 센닥(Maurice Sendak)이 1963년 발표한 그림책입니다. 주인공 맥스는 집 안에서 온갖 장난을 치다가 엄마에게 혼나 방에 갇히고, 그 방이 상상 속 괴물 나라로 변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출판 초기에는 아이가 부모를 잡아먹겠다고 소리치는 장면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이후 칼데콧 메달(Caldecott Medal)을 수상하며 그림책계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칼데콧 메달이란 미국도서관협회가 매년 가장 뛰어난 그림책 삽화에 수여하는 권위 있는 상으로, 그림책의 퀄리티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이 책에서 주목할 부분은 그림의 구성 방식입니다. 맥스가 방에 갇혀 상상 속 세계로 빠져들수록 흰 여백이 줄어들고 그림이 점점 페이지를 꽉 채워갑니다. 여기서 흰 여백이란 현실 세계를 상징하는 시각적 장치로, 그림이 확장될수록 독자도 상상의 세계 속으로 깊이 끌려들어가게 됩니다. 저는 처음 이 구성을 의식하고 보았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글 없이 그림만으로 세 페이지가 연결되어 괴물 잔치 장면을 표현하는 방식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이처럼 텍스트 없는 그림 연속 구성을 그림책 이론에서는 '워드리스 내러티브(Wordless Narrative)'라고 부릅니다. 워드리스 내러티브란 글 없이 그림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서사 기법으로, 독자가 스스로 장면을 해석하고 이야기를 완성하도록 유도합니다.

 

또한 맥스의 시각적 배치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그림 안에서 맥스는 몸집이 훨씬 큰 괴물들을 왼쪽으로 몰아내며 오른쪽에 위치합니다. 일반적으로 그림책에서 오른쪽 배치는 힘과 안정감을 상징하는데, 이를 '시각적 방향성(Visual Directionality)'이라고 합니다. 시각적 방향성이란 그림 속 인물의 위치와 이동 방향을 통해 독자에게 권력관계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전달하는 시각적 문법입니다. 작은 아이가 오른쪽에 서서 거대한 괴물들을 몰아내는 장면은, 말 한마디 없이도 맥스의 강인함과 자신감을 전달합니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읽을 때 효과적인 그림책 읽기 접근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표지를 보며 괴물처럼 소리를 내는 것으로 이야기 속으로 진입하기
  • 면지(속지)의 그림을 먼저 탐색하며 이야기의 배경과 분위기 유추하기
  • 글 없는 장면에서 아이들이 직접 소리와 대사를 만들어 넣기
  • 반복되는 단어('무서운')를 강조해서 읽으며 감정의 온도를 체험하기
  • 마지막 문장 "저녁밥은 아직도 따뜻했어"를 낮고 천천히 읽으며 여운 남기기

 

감정 표현과 상상력 놀이로의 확장

 

제가 직접 유아들과 이 그림책을 읽어보니, 아이들의 반응은 예상했던 것과 꽤 달랐습니다. 괴물의 모습을 보며 "무서워요"라고 하는 아이보다 "괴물이 웃고 있는 것 같아요", "눈이 커서 귀엽잖아요"라고 하는 아이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괴물이라는 존재에 대해 공포보다 친근감을 먼저 느끼는 것이었는데, 이게 이 그림책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책을 읽은 뒤 저는 "내가 상상하는 괴물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으로 미술 활동을 연결했습니다. 아이들이 그린 괴물들을 보면, 여러 색의 털을 가진 괴물, 팔이 여섯 개인 괴물, 날개가 달린 괴물 등 각자의 상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이처럼 그림책을 매개로 자신만의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과정을 유아교육에서는 '표상 활동(Representational Activity)'이라고 합니다. 표상 활동이란 아이가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을 그림, 만들기, 몸짓 등 다양한 방식으로 외부로 표현하는 것을 의미하며, 인지 발달과 창의성 모두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신체 표현 놀이도 함께 진행했는데, 이쪽이 더 난리가 났습니다. 괴물처럼 크게 걷고, 콧김을 뿜고, 무서운 소리를 내며 교실을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그림책이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몸 전체로 이야기를 살아내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유아의 감정 표현 능력과 상상력 발달의 관계에 대해서는 전문 연구도 뒷받침합니다. 유아기의 상상 놀이(상징 놀이)는 정서 조절 능력과 사회성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어 있습니다(출처: 한국아동학회). 또한 그림책을 활용한 감정 교육이 유아의 정서 인식 및 표현 능력을 유의미하게 향상시킨다는 결과도 있어, 이 같은 그림책 놀이 접근법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 교육적 근거를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출처: 육아정책연구소).

 

그림책 읽기 방식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기도 합니다. 정확한 텍스트 전달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맥스가 탄 배 이름 'Max 호'처럼 아이들이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표현은 바로 풀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 아이가 이해하지 못한 채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면, 그 아이는 이미 이야기에서 빠져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어려운 표현을 그 자리에서 짧게 풀어주면 뒷이야기에 아이들이 훨씬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통해 유아와 나눌 수 있는 감정은 결국 분노, 외로움, 그리고 집이라는 안도감입니다. 맥스가 아무리 멀리 떠나도 엄마가 차려둔 따뜻한 저녁밥으로 돌아오는 이 마지막 장면은, 아이들에게 "화가 나도 괜찮아, 마음껏 표현하고 돌아오면 돼"라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합니다.

 

그림책 한 권이 이렇게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저를 새롭게 놀라게 합니다. 앞으로 아이들과 그림책을 펼칠 때, 이야기를 읽어주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함께 소리를 만들고 몸으로 움직이며 감정을 꺼내보는 시간을 만들어 보시길 권합니다. 그 과정이 아이에게, 그리고 읽어주는 어른에게도 뜻밖의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aoXN1JkE1rc&list=PLYL5HwiWwpBJx8DUDqZ_fbmYC_bHdqH1_&index=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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