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그림책을 고를 때 오랫동안 그림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내용이 좋으면 됐지, 그림이 뭐가 중요하냐는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교실에서 유아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다 보니 아이들은 글보다 그림을 먼저 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림책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국내 창작 그림책과 국외 번역 그림책이 어떻게 다른지 직접 느낀 경험을 나눠보려 합니다.
국내 창작 그림책과 국외 번역 그림책의 특성 - 유아의 시지각과 조형 요소: 그림이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
유아들이 그림책을 어떻게 읽는지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제가 직접 관찰해 보니, 아이들은 텍스트를 읽기 전에 그림 속 표정과 배경을 먼저 훑습니다. 등장인물의 감정을 그림으로 먼저 파악하고, 그다음에 어른의 목소리를 따라 이야기를 이해하는 순서였습니다. 그림책에서 일러스트레이션(Illustration)이란 단순한 삽화가 아니라, 텍스트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의미를 생성하는 시각 언어입니다. 쉽게 말해, 글이 없어도 그림만으로 이야기가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점에서 조형 요소(造形 要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조형 요소란 선, 색, 형태처럼 그림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선 하나만 봐도 직선은 명확하고 긴장된 느낌을, 곡선은 부드럽고 자유로운 느낌을 줍니다. 수평선은 안정감을, 대각선은 역동성을 표현하죠. 국내 창작 그림책 《구름빵》에서 굵고 자유분방한 연필선이 쓰인 것도 이 맥락입니다. 그 선이 가져오는 자연스러움 덕분에 아이들이 그림 속 세계를 더 편안하게 받아들였던 기억이 납니다.
외곽선의 유무도 읽히는 느낌을 크게 바꿉니다. 굵은 외곽선은 대상을 선명하게 구분 지어 어린 독자에게 명확한 시각 정보를 전달하는 반면, 외곽선 없이 면으로만 처리된 그림은 분위기가 훨씬 부드럽고 몽환적입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기법이 해칭(hatching)입니다. 해칭이란 평행선이나 교차선을 반복하여 명암과 질감, 입체감을 표현하는 기법으로,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교차 음영선을 활용해 괴물의 질감을 살린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제가 이 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줬을 때, 아이들이 괴물 그림을 가리키며 "여기 선이 이상해요"라고 할 만큼 그 질감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시지각(視知覺)이라는 개념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지각이란 눈으로 들어온 시각 정보를 뇌가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유아는 사물을 세세하게 분석하기보다 전체적인 인상을 직관적으로 파악합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섬세한 표현보다, 단순하면서도 감각적인 자극이 오히려 아이들의 시선을 더 오래 붙잡습니다(출처: 한국학술정보원 RISS). 유아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이 단순함 속에서도 예술성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국내외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 비교: 친숙함과 새로움 사이
국내 창작 그림책과 국외 번역 그림책, 어느 쪽이 더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이 질문에 한동안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교실에서 두 종류를 번갈아 쓰다 보니 어느 쪽도 쉽게 포기할 수 없었거든요.
국내 창작 그림책을 읽을 때 유아들이 보이는 반응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전통시장, 계절 풍경, 가족이 함께하는 장면처럼 자신의 일상과 연결되는 그림을 보면 "우리 엄마도 이래요!"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이것이 국내 창작 그림책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고유의 정서와 생활 문화를 시각적으로 담아내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국외 번역 그림책에서는 다른 종류의 반응이 나왔습니다. 낯선 화풍, 콜라주(collage) 기법처럼 다양한 재료를 오려 붙여 구성한 표현, 또는 사진과 그림을 혼합한 방식들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크게 자극했습니다. 콜라주 기법이란 신문지, 천, 사진 등 여러 소재를 잘라 붙여 하나의 화면을 구성하는 표현 기법으로, 질감과 색감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시각적 풍부함을 만들어냅니다. 어떤 아이는 그림책을 덮은 뒤에도 "저도 이렇게 만들어보고 싶어요"라고 했고, 실제로 미술 활동에서 번역 그림책에서 본 색채 배합을 그대로 따라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이 장면이, 일러스트레이션이 단순한 감상 이상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줬습니다.
국내외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의 차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국내 창작 그림책: 친숙한 정서와 일상 문화가 담긴 배경, 유아가 자신의 경험과 쉽게 연결할 수 있는 표현
- 국외 번역 그림책: 과감한 색채 대비, 콜라주·해칭 등 다양한 표현 기법, 독창적인 화풍으로 새로운 시각 경험 제공
- 공통점: 글과 그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때 교육적 효과가 극대화됨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콜라주, 판화, 디지털 아트를 활용한 창작 그림책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분명히 긍정적입니다. 유아의 미적 감수성(美的 感受性)을 자극하는 것, 즉 아름다움에 반응하고 느끼는 능력을 키우는 데 있어서 표현 기법의 다양성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국내 그림책도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표현의 외연을 넓혀갈 때 더 경쟁력 있는 작품이 탄생할 수 있다고 봅니다(출처: 경희대학교 디지털논문).
결국 좋은 그림책은 어느 나라 것이냐가 아니라, 글과 그림이 하나로 어우러져 유아에게 새로운 감동과 경험을 주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림책을 고를 때 이제 일러스트레이션의 표현 방식과 예술성을 함께 봅니다. 어떤 선을 썼는지, 색을 어떻게 배치했는지, 그 그림이 유아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교사든 부모든, 그림책의 그림을 한 번만 더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훨씬 풍부한 책 경험을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참고: https://khu.dcollection.net/public_resource/pdf/200000061699_20260609094339.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