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처음에 만 3세 유아들이 그림책 한 권으로 감정을 배울 수 있다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역할놀이와 신체표현을 함께 엮었을 때 아이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 글은 그 경험과 함께 정서지능 발달을 위한 실질적인 방향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림책과 만 3세 정서지능, 말보다 몸이 먼저인 아이들, 그림책으로 감정을 꺼내다
만 3세 유아는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설명하는 능력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시기입니다. 심리 발달 측면에서 이 시기를 전조작기(Preoperational Stage)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전조작기란 피아제(Piaget)의 인지발달 이론에서 언어와 상징은 사용하지만 논리적 사고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만 2~7세 구간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 나이 아이들에게 "지금 기분이 어때?"라고 물으면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제가 직접 만 3세 반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이 벽을 자주 느꼈습니다. 언어로 끌어내려하면 입을 다물던 아이들이, 그림책 속 장면을 몸으로 따라 해 보라고 했을 때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슬픈 장면에서는 몸을 웅크리고 천천히 걸었고, 기쁜 장면에서는 팔을 크게 벌리고 방 안을 뛰어다녔습니다. 감정이 몸을 통해 먼저 나오는 것을 눈앞에서 본 순간이었습니다.
그림책은 이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합니다. 등장인물의 표정과 상황이 시각적으로 제시되기 때문에, 아이들이 추상적인 감정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먼저 접할 수 있습니다. 역할놀이(Role Play)는 그다음 단계입니다. 역할놀이란 아이가 특정 등장인물이 되어 그 인물의 행동과 감정을 직접 재현하는 활동으로, 단순히 이야기를 듣는 것과 달리 감정을 내면화하는 과정이 일어납니다. 제 경험상 이 단계에서 아이들은 "속상해", "무서워", "행복해" 같은 감정 어휘를 자연스럽게 먼저 꺼냈습니다. 가르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역할을 하다 보니 그 말이 나왔습니다.
정서지능을 구성하는 요소들, 활동 안에서 함께 자란다
정서지능(EQ, Emotional Intelligence)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감정을 잘 아는 것"이 아닙니다. 정서지능이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며, 감정을 조절하고,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이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적절히 활용하는 복합적인 능력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정서지능은 학업 성취뿐 아니라 또래 관계 형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그림책을 활용한 역할놀이와 신체표현 통합활동이 만 3세 유아의 정서지능 전체 및 모든 하위 요소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향상을 가져왔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정서지능의 하위 요소는 다음과 같이 구성됩니다.
- 자기정서 인식 및 표현: 자신이 지금 어떤 감정인지 알고 드러내는 능력
- 감정 조절 및 충동 억제: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상황에 맞게 다루는 능력
- 자기 정서 이용: 목표를 위해 감정을 동기화하는 능력
- 타인정서 인식 및 배려: 상대방의 감정을 읽고 공감하는 능력
- 교사와의 관계 및 또래와의 관계: 사회적 맥락에서 정서를 활용하는 능력
이 요소들이 하나의 활동 안에서 동시에 자극된다는 점이 통합활동의 핵심 강점입니다. 제가 관찰한 장면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친구가 슬픈 역할을 할 때 옆에 있던 아이가 "○○가 슬픈 것 같아, 도와주고 싶어"라고 자연스럽게 말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따로 가르친 것도 아니었습니다. 활동 안에서 타인정서 인식 능력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리과정(Nuri Curriculum)도 이 방향과 일치합니다. 누리과정이란 만 3~5세 유아를 위한 국가 수준의 공통 교육과정으로, 인지 학습보다 정서적 능력과 사회성 발달을 우선으로 두고 있습니다. 2012년 도입 이후 유아 교육 현장에서 정서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어 왔으며(출처: 교육부), 그림책 기반의 통합활동은 이 기조에 잘 부합하는 접근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교사가 놓치기 쉬운 것, 표현 방식의 다양성
이 활동이 효과적이라는 데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만 현장에서 직접 해보면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을 느꼈습니다. 모든 아이가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해봤는데, 같은 활동을 해도 어떤 아이는 몸 전체를 쓰며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어떤 아이는 자리에서 손가락만 살짝 움직이거나 조용히 바라보는 것으로 참여합니다. 억지로 표현을 끌어내려하면 오히려 활동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럴 때는 교사가 먼저 과장되게 표현하며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정서조절(Emotional Regulation)이라는 개념도 이 맥락에서 중요합니다. 정서조절이란 자신의 감정을 상황에 맞게 표현하거나 억제하는 능력으로, 이 능력이 발달 중인 만 3세 유아에게는 표현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정서적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유아의 표현 수준을 존중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열어두는 것이 교사의 역할입니다.
유아기 정서 발달 연구에서도 표현의 자율성과 안전한 환경 조성이 정서지능 향상의 선행 조건임을 강조합니다(출처: 한국유아교육학회). 이 점을 현장에서 의식하지 않으면, 활동의 형식만 갖추고 실제 정서적 효과는 반감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저도 처음에는 놓쳤던 부분입니다.
그림책을 활용한 역할놀이와 신체표현 통합활동은 만 3세 유아의 정서지능 발달에 실질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설명으로 가르치는 감정 교육보다, 직접 느끼고 움직이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훨씬 깊이 감정을 내면화합니다. 이 활동을 시작하려는 분들께 한 가지만 권한다면, 그림책 선정보다 아이들이 편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먼저 만드시길 바랍니다. 그 환경이 갖춰졌을 때, 활동의 효과는 훨씬 커집니다.
참고: https://dcollection.kyonggi.ac.kr/public_resource/pdf/000000041222_20260602105613.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