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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활용한 배려교육 (필요한가, 방식, 적용)

by seulki87 2026. 5. 23.

배려는 경험으로 스며드는 것

 

솔직히 저는 처음에 배려를 '가르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자라면서 알게 되는 거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현장에서 유아들과 그림책을 읽으며 감정을 이야기하다 보니, 배려는 설명이 아니라 경험으로 스며드는 것이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그림책을 활용한 배려교육, 배려교육이 왜 지금 유아에게 필요한가

최근 유아교육 현장에서 배려교육(caring education)이 다시 중요하게 이야기되는 이유는 단순히 "착한 아이"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또래와의 갈등, 감정 조절의 어려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관계 문제들이 점점 더 일상적인 과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유치원 현장에서도 "내 거야!", "내가 먼저 했어!" 같은 말로 시작되는 다툼을 하루에도 여러 번 마주하게 됩니다.

 

문제는 아이들이 규칙을 몰라서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자기 일처럼 느껴보는 경험 자체가 부족하다는 데 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2012년부터 시행된 누리과정은 질서·협력·배려 같은 인성 요소를 핵심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여기서 누리과정이란 만 3~5세 유아를 대상으로 국가가 공통으로 운영하는 교육·보육과정을 의미합니다. 이전처럼 지식 전달 중심이 아니라, 관계 맺기와 정서 발달을 유아교육의 중요한 축으로 본 것입니다. 특히 유아기는 타인의 감정을 읽고 사회적 관계를 배우는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이 시기의 경험이 이후 사회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습니다.

 

교육학자 넬 나딩스(Nel Noddings)는 배려를 단순한 예절이나 친절 행동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으로 설명했습니다. 즉, "배려해라"라고 가르친다고 아이가 배려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 관계 속에서 누군가의 감정을 느끼고 반응해 보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이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배려를 암기할 덕목이 아니라 경험해야 할 감정으로 바라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제가 현장에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아이들에게 "친구를 도와줘야지"라고 설명할 때보다, 그림책 속 인물이 속상해하는 장면을 함께 보고 "이 친구 마음이 어땠을까?"를 이야기할 때 훨씬 깊은 반응이 나왔습니다. 어떤 아이는 "혼자 있어서 무서웠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고, 또 다른 아이는 "나도 엄마 늦게 왔을 때 울었어요"라며 자기 경험을 꺼냈습니다. 배려가 지식이 아니라 공감에서 시작된다는 걸 그 순간마다 실감하게 됩니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유아기를 인성 발달의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라고 설명합니다. 결정적 시기란 특정 능력이나 정서가 가장 민감하게 형성되는 시기를 의미하는데, 이 시기의 경험은 이후 발달 전반에 오래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유아기는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점차 벗어나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전환기이기 때문에, 배려교육 역시 이 시기에 가장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림책이 배려교육에 자주 활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림책은 아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감정과 상황을 안전하게 간접 경험하게 만들어 줍니다. 슬퍼하는 친구, 외로운 동물, 용기 내지 못하는 주인공을 바라보며 아이는 자연스럽게 감정을 추론하고, 자신의 경험과 연결하게 됩니다. 특히 그림책은 짧은 문장과 시각적 장면을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아직 언어 표현이 충분하지 않은 유아도 감정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그림책을 활용한 배려교육이 유아의 자아존중감과 친사회적 행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친사회적 행동(prosocial behavior)이란 돕기, 양보하기, 공감하기처럼 타인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결국 배려교육은 예의 교육이 아니라, 아이가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감각을 배우는 과정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책이 배려를 가르치는 방식

그림책을 활용한 배려교육의 효과를 검증한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만 4세 유아를 대상으로 실험집단과 비교집단을 나눠 진행한 결과, 배려교육에 참여한 실험집단은 자아존중감의 다섯 가지 하위 영역 전반에서 유의미한 향상을 보였습니다. 자아존중감(Self-esteem)이란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로, 인지적 능력, 동료수용 능력, 신체적 능력, 어머니 수용, 자기 수용 등으로 세분화됩니다.

 

친사회적 행동(Prosocial Behavior)에서도 효과가 확인됐습니다. 친사회적 행동이란 돕기, 나누기, 위로하기처럼 타인에게 이익을 주려는 의도에서 자발적으로 나오는 행동을 의미하며, 이 연구에서는 개인정서 조절능력, 교육기관 적응능력 두 영역에서 실험집단이 비교집단보다 유의미하게 높은 점수를 기록했습니다. 다만 대인관계 형성능력에서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는데, 이는 만 4세가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협동적 사고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있다는 Piaget의 발달 이론과 맞닿아 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직접 겪은 장면이 있습니다. 그림책을 읽고 "친구가 속상할 때 어떻게 해 줄 수 있을까?"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날 오후 놀이 시간에 한 아이가 블록을 무너뜨려 울상이 되자 옆에 있던 아이가 "괜찮아, 내가 같이 만들어 줄게"라고 먼저 다가갔습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요.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배려 교육에서 그림책이 효과적인 이유는 감정이입(empathy)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이입이란 타인의 감정과 상황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심리적 과정으로, 배려적 태도 형성의 출발점이 됩니다. 유아는 등장인물의 상황을 보면서 "저 친구는 왜 저렇게 슬플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배려는 지식이 아니라 태도로 자리 잡습니다.

 

그림책 배려교육이 자아존중감과 친사회적 행동에 미치는 핵심 효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자아존중감 5개 하위 영역(인지적 능력, 동료수용, 신체적 능력, 어머니 수용, 자기수용) 전반 향상
  • 개인정서 조절능력: 그림책 속 인물의 감정을 다루는 경험이 자기 감정 조절로 연결
  • 교육기관 적응능력: 교사·또래와의 배려적 상호작용이 기관 생활 적응도를 높임
  • 대인관계 형성능력: 만 4세 발달 특성상 단기 교육으로는 유의미한 변화 확인이 어려움

현장에서 배려교육을 실제로 적용할 때

배려교육이 효과를 내려면 그림책을 읽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된다는 점을 제 경험상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아이들이 감정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림책 읽기 자체에 집중했다가,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짧아지면 아이들의 반응도 피상적으로 끝난다는 걸 느꼈습니다.

 

평소에 소극적이던 한 아이가 그림책 속 주인공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친구가 안 놀아줘서 슬펐어"라고 말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그렇게 또렷하게 표현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 아이는 "나도 잘하는 게 있어"라는 말도 했습니다. 그림책이 자아존중감과 배려를 동시에 건드릴 수 있다는 걸 그 순간 실감했습니다.

 

Noddings가 제시한 배려 교육의 방법론은 현장에서도 꽤 실용적입니다. 대화, 본보기, 실천, 인정하고 격려해 주기라는 네 가지 원리는 교사가 먼저 배려하는 태도를 보이고, 아이가 그것을 관찰하고 모방하며, 실제로 해 볼 기회를 주고, 그 시도를 알아봐 주는 구조입니다. 유아교육에서 교사의 역할이 단순한 진행자가 아닌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림책을 읽히면 배려심이 길러진다"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책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교사가 아이의 반응을 수용하고 감정을 언어화하는 과정을 함께 만들어 주지 않으면 효과가 반감됩니다. 연구에서도 배려교육 기간 동안 교사 교육을 병행했을 때 아이들의 교육기관 적응능력 점수가 향상됐다는 결과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2019년 개정 누리과정은 유아의 주도적 놀이와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개편되었으며, 배려와 협력 같은 인성 요소를 교육과정 전반에 통합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출처: 교육부). 이러한 흐름에서 그림책 기반 배려교육은 누리과정의 방향과도 잘 맞닿아 있습니다. 유아 인성교육 프로그램의 효과성과 필요성은 학술 연구들에서도 반복적으로 검증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교육개발원).

 

배려 교육이 단기간에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들어 낼 거라고 기대하는 분들도 있는데, 실제로 현장에서 보면 그것보다는 조금 더 긴 호흡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배려를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신의 태도로 체화하려면, 반복된 경험과 그것을 알아봐 주는 어른의 시선이 쌓여야 합니다.

 

그림책은 그 과정에서 꽤 괜찮은 출발점이 됩니다. 거창한 도덕 수업이 아니라 이야기 하나, 질문 하나에서 시작되는 배려의 경험. 저는 그 작은 순간들이 쌓일 때 아이들이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유아 교육 현장에 계신 분들이라면, 오늘 읽을 그림책 한 권에 어떤 질문을 덧붙일지 한 번쯤 고민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참고: https://dcollection.cau.ac.kr/public_resource/pdf/000000044845_2026052212043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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