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 성교육 현장에서 그림책을 활용했을 때 아이들의 반응이 예상보다 훨씬 자연스러웠습니다. 처음엔 저도 조심스러웠는데, 직접 겪어보니 그림책이 이 주제에서 얼마나 강력한 매체인지 실감했습니다. 자아존중감을 높이고 건강한 성 태도를 형성하는 데 그림책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제 경험을 중심으로 풀어보겠습니다.
그림책을 활용한 유아 성교육, 그림책으로 자아존중감을 키운다는 것
처음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을 주제로 활동을 진행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솔직하고 다양하게 자기 자신을 표현할 줄 몰랐거든요. "나는 웃는 얼굴이 좋아", "나는 달리기를 잘해서 좋아"라는 말들이 쏟아졌고, 옆에 앉은 친구에게 "○○도 멋져"라고 자연스럽게 말해주는 장면도 목격했습니다. 단순한 칭찬 활동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형성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아존중감(self-esteem)이란 자신을 유능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심리적 신념을 말합니다. 여기서 자아존중감이란 단순히 "나는 잘났어"가 아니라, 유능감·소속감·가치감·통제감이라는 네 가지 하위 요소로 구성된 복합적인 개념입니다. 유능감은 "나는 할 수 있다"는 느낌, 소속감은 "나는 이 집단에 속해 있다"는 안정감, 가치감은 "나는 소중한 존재다"라는 인식, 통제감은 "나는 내 상황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는 감각입니다. 그림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이 이 네 가지를 골고루 자극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실제로 만 5세를 대상으로 한 6주간의 그림책 활용 통합적 성교육 프로그램 연구에서, 실험집단의 사후 자아존중감 평균 점수(3.96점)가 통제집단(3.55점) 보다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습니다(p <. 01). 유능감, 소속감, 가치감, 통제감 네 영역 모두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향상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결과를 접했을 때, 제가 현장에서 느낀 감각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책 활용 성교육이 자아존중감에 미치는 핵심 메커니즘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그림책 속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며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연습이 이루어진다
-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는 이야기가 자기 가치감(self-worth) 형성을 직접적으로 자극한다
- 친구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인정하는 과정에서 소속감이 자연스럽게 강화된다
- 이야기 속 주인공의 선택을 따라가며 "나도 할 수 있다"는 통제감을 간접 체험한다
누리과정에서는 유아의 전인적 발달을 강조하는데, 전인적 발달이란 신체·정서·언어·사회·인지 영역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림책 한 권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림을 그리는 활동 하나가 이 모든 영역에 동시에 닿을 수 있다는 점이, 성교육이라는 민감한 주제와 맞물렸을 때 특히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성 태도가 바뀌는 순간, 현장에서 포착하다
성교육 활동 중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따로 있습니다. 몸의 경계(body boundary)를 다룬 그림책을 읽은 후, 아이들에게 "원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하면 될까?"라고 물었습니다. 여기서 몸의 경계란 자신의 신체에 대한 자율권, 즉 누가 내 몸을 만져도 되는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그때 한 아이가 "싫어요라고 말할 수 있어요"라고 또렷하게 답했고, 다른 아이는 "선생님께 이야기할 거예요"라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그 순간, 이 아이들이 단순히 지식을 외운 게 아니라 실제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태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성에 대한 태도(attitude toward sexuality)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에 대해 일관되게 반응하는 생각·감정·행동의 패턴을 말합니다. 여기서 성에 대한 태도란 단순히 성별 차이를 아는 것이 아니라, 배려적 사고·행동에 대한 생각·성역할 고정관념이라는 세 가지 측면이 어떻게 자리 잡혀 있느냐를 가리킵니다. 특히 성역할 고정관념(gender role stereotype)이란 "남자는 이래야 해, 여자는 저래야 해"처럼 성별에 따라 역할을 고정시키는 편견을 뜻하는데, 이것이 유아기에 형성되면 이후 수정이 어렵습니다.
연구 결과를 보면 그림책을 활용한 통합적 성교육 이후, 실험집단의 성 태도 전체 평균(3.86점)이 통제집단(3.52점)보다 유의미하게 높아졌습니다(p <. 05). 특히 성역할 고정관념 하위 영역에서 p <. 01 수준으로 가장 강한 변화가 확인되었는데, 이는 그림책 속 다양한 인물 묘사가 아이들의 고정된 시각을 자연스럽게 흔들어준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공동으로 고시한 2019 개정 누리과정에서도 유아의 자율성과 자기 결정권 존중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성교육의 방향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출처: 교육부).
제가 현장에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성교육이 지나치게 위험 예방 중심으로만 흘러갈 때 오히려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건 나쁜 거야", "조심해야 해"라는 메시지가 반복되면 아이들이 자신의 몸과 관련된 모든 것을 두렵고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보다는 "내 몸은 소중해", "나는 느낌을 말할 수 있어"라는 긍정적인 자기 인식에서 출발할 때, 아이들이 훨씬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태도를 보이더라고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보고에 따르면 성교육의 효과는 내용 전달 방식이나 매체에 따라 크게 달라지며, 유아기일수록 이야기 중심의 간접 경험이 직접 설명보다 더 효과적으로 가치관 형성에 작용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결국 그림책을 활용한 통합적 성교육은 지식을 주입하는 수업이 아닙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아이들은 이야기 속 인물과 함께 감정을 느끼고 대화를 나누면서 자기도 모르게 태도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유아의 자아존중감과 성에 대한 태도는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서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아이가 친구의 몸과 감정도 소중하게 대하고, 불편한 상황에서 분명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그 출발점으로서 그림책은 지금까지 제가 써본 도구 중에서 가장 조용하고 깊이 있게 작동하는 매체였습니다. 유아교육 현장에서 성교육을 고민하고 계신다면, 거창한 프로그램보다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 한 권을 천천히 읽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nambu.dcollection.net/public_resource/pdf/200000225613_20260601112947.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