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그림책을 활용한 이야기 나누기 활동 (자기 조절력, 매개, 교실의 언어)

by seulki87 2026. 6. 5.

8주간 16회의 이야기 나누기 활동만으로 만 5세 유아의 자기 조절력이 유의미하게 향상되었다는 연구 결과를 접했을 때, 저도 모르게 "맞아, 그랬지"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림책 한 권이 교실 분위기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직접 경험한 사람으로서, 이 결과가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림책을 활용한 이야기 나누기 활동, 자기 조절력- 참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상황에 맞게 행동을 조율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자기 조절력(self-regulation)이라는 말을 들으면 많은 분들이 "감정을 참는 능력"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연구에서 말하는 자기 조절력은 그보다 훨씬 넓습니다. 여기서 자기 조절력이란 단순히 충동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상황에 맞게 행동을 조율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상위인지(metacognition) 능력을 의미합니다. 상위인지란 자신의 사고 과정을 스스로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 쉽게 말해 "내가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아는 능력입니다.

 

이 자기조절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인지적 자기 조절(cognitive regulation)은 계획하기, 점검하기, 평가하기로 구성되고, 정서적 자기 조절(emotional regulation)은 정서 인식, 정서 억제, 대처하기로 구성됩니다. 기존에는 정서 측면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최근 들어 계획-점검-평가라는 인지적 흐름의 중요성도 함께 부각되고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유아한테 계획하기가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림책을 읽고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유아들이 자기 나름의 계획을 말로 꺼내기 시작합니다. 그게 작은 것처럼 보여도 인지적 자기 조절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현장에서 느꼈습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보고에 따르면 유아기의 자기조절 발달 수준은 이후 학교생활 적응과 또래관계의 질을 예측하는 핵심 변인으로 기능합니다(출처: 한국교육개발원). 그만큼 이 시기의 개입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림책이 매개가 되는 순간

 

그림책을 활용한 이야기 나누기, 영어로는 large-group discussion based on picture books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야기 나누기란 교사가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수업이 아니라, 그림책 내용을 바탕으로 교사와 유아가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언어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교수-학습 활동을 의미합니다. Vygotsky의 사회문화이론(sociocultural theory)에 기반한 방식으로, 이 이론은 언어적 상호작용이 인지 발달을 이끈다는 관점에서 출발합니다.

 

저는 친구와의 다툼 장면이 담긴 그림책을 읽고 유아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왜 화가 났을까?"라고 물었더니 처음에는 "그냥요", "몰라요"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같은 주제의 그림책을 또 읽고 나서는 "친구가 내 말을 안 들어서요", "먼저 빼앗아서 속상했을 거예요"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단 몇 회의 이야기 나누기가 이 정도 변화를 이끌어낼 줄은 몰랐습니다.

 

이야기 나누기가 효과적인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유아가 주인공의 감정과 행동을 자신의 경험과 연결하여 내면화할 수 있습니다.
  • "왜 그랬을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같은 열린 질문이 유아의 반성적 사고를 자극합니다.
  • 또래의 다양한 의견을 들으며 여러 관점을 접하고 자신의 생각을 조율하는 경험을 합니다.
  • 그림책이라는 안전한 허구 공간에서 갈등 상황을 간접 경험하므로 심리적 부담 없이 탐색이 가능합니다.

유아교육 분야에서는 이처럼 이야기 나누기를 정답을 전달하는 수업이 아닌 유아의 주도성을 이끌어내는 상호작용 방식으로 재정의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교사 주도적으로 운영되던 기존 이야기 나누기의 한계를 넘어서는 방향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달라지는 건 교실의 언어다

 

연구에서는 실험집단(그림책 기반 이야기 나누기)과 비교집단(일반 이야기 나누기)을 구분한 준실험설계(quasi-experimental design)를 사용했습니다. 준실험설계란 무작위 배정이 어려운 현실 교육 상황에서 집단 간 비교를 통해 처치 효과를 검증하는 연구 방법입니다. 사전 점수를 공변인(covariate)으로 처리하는 공변량 분석(ANCOVA)을 적용하여 사전 집단 차이를 통제한 후 순수한 프로그램 효과를 확인했고, 인지조절과 정서조절 모두에서 p <. 001 수준의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수치만 보면 충분히 납득이 됩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한 가지 조건을 더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림책을 읽는 것 자체보다, 그 이후에 어떤 대화가 이어지는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같은 그림책을 읽었더라도 실험집단과 비교집단의 결과가 달랐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림책은 도구일 뿐이고, 핵심은 교사가 유아의 생각을 어떻게 끌어내느냐에 있습니다.

 

저도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교훈적인 그림책을 읽고 "착하게 살자"는 메시지만 전달하는 방식으로는 유아의 행동이 잘 바뀌지 않았습니다. 반면 유아가 스스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말로 꺼내고, 그걸 일상에서 실제로 적용해 보는 경험이 쌓일 때 교실의 언어 자체가 달라지는 걸 느꼈습니다. 놀이 중 갈등이 생겼을 때 "차례 기다려보자"라고 먼저 말하는 유아가 생기기 시작했을 때, 그게 그림책 이야기 나누기의 효과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누리과정에서도 언어 발달과 사회관계 영역의 통합적 접근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야기 나누기는 이 두 영역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활동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출처: 교육부 누리과정).

 

결국 그림책을 활용한 이야기 나누기는 특별한 장비도, 복잡한 프로그램도 필요 없습니다. 필요한 건 유아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교사의 태도와, 정답 없이 생각을 열어두는 질문입니다. 자기조절력을 키우고 싶다면 교실 한편에 그림책 한 권을 꺼내고, 오늘 있었던 일과 연결해 한 마디씩 나눠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작은 대화가 쌓이면 아이의 언어가 바뀌고, 언어가 바뀌면 행동이 바뀌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 https://look.dcollection.net/public_resource/pdf/000001599644_20260605132732.pdf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