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조용히 앉아 교사의 말만 듣는 교실이 과연 더 좋은 교실일까요? 저는 오랫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현장에서 그림책을 활용한 하브루타 활동을 경험해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시끄럽고 어수선해 보이는 그 교실에서 아이들이 훨씬 더 많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림책을 활용한 하브루타 활동, 조용한 교실이 꼭 좋은 교실은 아닙니다
하브루타(Havruta)란 유대인의 전통적인 학습 방법으로, 짝을 이루어 질문하고 토론하며 논쟁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하브루타란 히브리어로 '친구'를 뜻하는 '하베르(haver)'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단순히 교사의 설명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 스스로가 질문을 만들고 대화를 통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 전체를 의미합니다.
제가 처음 이 방식을 교실에 도입했을 때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만 5세 유아들이 서로 "왜 그렇게 생각했어?"라고 묻는 장면을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림책 한 권을 함께 읽고 나서 등장인물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진지하게 반응했습니다. 한 아이는 "친구를 먼저 도와줘야 해"라고 말했고, 다른 아이는 "그래도 자기 마음이 먼저 중요하지"라고 반박했습니다. 처음엔 서로 주장만 하던 두 아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네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라고 말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그 순간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유아기는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전조작기(Pre-operational Stage)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전조작기란 피아제(Piaget)의 인지발달 이론에서 만 2~7세에 해당하는 단계로, 언어와 상징을 사용하기 시작하지만 아직 논리적 추론보다는 직관적 사고에 의존하는 시기를 말합니다. 이 시기에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친구의 생각을 들으며 비교하는 경험은 단순한 말하기 연습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집니다. 실제로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유아 교육과정에서 의사소통 역량과 창의·융합적 사고를 핵심 역량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그림책이 토론의 문을 열어줍니다
그림책은 단순한 읽기 교재가 아닙니다. 글과 그림이 함께 이야기를 구성하는 독특한 예술 형식으로, 유아가 글 없이도 그림만으로 감정과 상황을 읽어내며 자신의 경험을 투영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그림책을 매개로 하브루타 활동을 진행할 때와 단순히 읽어주고 감상을 물어볼 때의 아이들 반응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특히 결말이 열려 있거나 등장인물의 선택이 애매한 그림책을 고를수록 아이들의 토론은 더 풍부해졌습니다. "주인공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질문 하나에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결말을 만들어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창의적 인성(Creative Personality)의 발현 장면이었습니다. 여기서 창의적 인성이란 단순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능력만이 아니라, 호기심·상상력·개방성·독립심 등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돕는 성격적 성향과 내적 태도 전반을 뜻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창의성을 기른다고 하면 흔히 미술 활동이나 만들기 위주를 떠올리는 분들도 있는데, 실제로 대화를 통한 상상 확장이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등장인물에 감정이입(Empathy)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려 노력했고, 이전에는 쉽게 말하지 못하던 아이도 점차 자신 있게 손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감정이입이란 타인의 감정 상태를 자신의 것처럼 느끼고 이해하는 능력으로, 사회적 상호작용의 핵심 기제입니다.
그림책을 활용한 하브루타 활동에서 효과적인 질문 유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사실 확인 질문: "이 장면에서 주인공은 무엇을 했나요?"
- 이유 탐색 질문: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 상상 확장 질문: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 연결 질문: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이 네 가지 질문 유형을 단계적으로 활용했을 때, 아이들의 발화량과 발화 내용의 복잡성이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을 직접 관찰했습니다.
말이 적은 아이도 자랄 수 있는 교실
하브루타 활동에서 간과하기 쉬운 지점이 있습니다. 모든 아이가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주장성(Assertiveness)이 낮은 아이, 즉 자신의 생각·느낌·욕구를 다른 사람의 감정을 해치지 않으면서 표현하는 능력이 아직 발달 중인 아이에게는 이런 활동이 오히려 위축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주장성이란 상대방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태도를 말합니다.
제가 직접 현장에서 겪어보니, 이런 아이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충분히 기다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교사가 답을 채우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아이가 머뭇거리는 10초를 그냥 두었을 때 작은 목소리로 나오는 의견이 종종 가장 창의적인 발상이었습니다. 공변량분석(ANCOVA)을 활용한 연구 결과에서도 실험집단 유아들의 적극적 주장성과 방어적 주장성 모두 비교집단보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허용적인 분위기가 전제되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공변량분석이란 사전 점수 등 집단 간 초기 차이를 통제한 뒤 처치 효과를 비교하는 통계 방법입니다.
유아교육 현장에서 교사의 역할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이끌어내는 조력자에 가깝습니다. 교육부가 고시한 2019 개정 누리과정에서도 유아 중심·놀이 중심 교육을 명시하며 교사 주도의 일방적 수업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출처: 교육부). 그림책을 활용한 하브루타 활동은 그 방향성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결국 이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나누는 과정 자체를 경험하게 해주는 일입니다. 아이들이 친구의 의견을 틀렸다고 단정하지 않고 "왜 그렇게 생각했어?"라고 묻는 순간, 그 교실에서는 주장성과 창의적 인성이 동시에 자라고 있는 셈입니다. 이 활동을 아직 시도해보지 않으셨다면, 좋아하는 그림책 한 권으로 가볍게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snue.dcollection.net/public_resource/pdf/200000226004_20260522110257.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