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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만들기 (더미북, 썸네일 스케치에서 채색까지, 인쇄와 제본)

by seulki87 2026. 4. 9.

 

한 권의 그림책이 완성되기까지 최소 수십 번의 수정과 여러 전문가의 손을 거친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저는 유치원 교사로 일하면서 아이들과 그림책 만들기 활동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그림책은 만들기 쉬운 것'이라는 제 선입견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더미북: 진짜 책이 되기 전의 연습본

 

그림책 제작 과정에서 가장 흔히 오해받는 단계가 바로 더미북(dummy book) 단계입니다. 더미북이란 정식 인쇄에 들어가기 전에 책이 어떻게 완성될지 가늠하기 위해 만드는 가제본, 즉 시험용 모형 책을 말합니다. 영어 단어 'dummy'가 '모조품'을 뜻하는 데서 유래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림책은 그림만 완성되면 책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실제로는 더미북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만들고 검토하는 과정이 핵심입니다. 구상 단계에서 한 번, 스케치 단계에서 또 한 번, 채색 이후에도 다시 만들어서 글과 그림이 서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지 확인합니다. 책장을 실제로 넘기면서 봐야만 알 수 있는 흐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아이들과 그림책 활동을 해봤는데, 이 더미북의 개념을 유아 수준에서 단순화해서 적용했을 때 효과가 상당했습니다. 종이를 반으로 접어 책처럼 묶은 뒤 장면을 배치해 보도록 했더니, 아이들이 "이 장면은 여기가 아니라 뒤에 와야 해요"라고 스스로 판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 구성력이 자연스럽게 자극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림책 제작에서 더미북 단계가 중요한 이유는 한 권의 책 안에서 글과 그림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면 독자가 혼란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특히 유아를 대상으로 한 그림책일수록 이 조화가 핵심입니다.

 

썸네일 스케치에서 채색까지, 작가의 고민이 담기는 구간

 

썸네일 스케치(thumbnail sketch)란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작은 종이에 장면을 간략히 정리하는 초기 구상 스케치를 말합니다. 여기서 썸네일이란 아이디어를 빠르게 시각화하는 최소 단위의 스케치로, 정교함보다 흐름과 구성을 먼저 잡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스토리보드(storyboard)는 이 썸네일 스케치를 발전시켜 이야기의 각 장면을 순서대로 시각화한 도식입니다. 여기서 스토리보드란 영화나 애니메이션 제작에서도 쓰이는 방식으로, 전체 이야기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한 장면 연출표라고 보면 됩니다.

일반적으로 그림책의 완성도는 채색에서 결정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썸네일 스케치와 스토리보드 단계에서 이미 책의 성패가 갈린다고 봅니다. 아이들과 그림책 활동을 진행할 때도 "먼저 어떤 이야기를 할 건지 간단하게 그려볼까?"라며 스토리보드에 해당하는 단계를 먼저 거치게 했는데, 이 단계를 거친 아이들이 채색 단계에서 훨씬 자신 있게 진행했습니다.

채색 방식은 작가마다, 책의 분위기마다 다릅니다. 종이에 물감으로 직접 그리기도 하고, 오브제를 만들거나 오려서 사진으로 찍기도 하며, 디지털 도구로 채색하기도 합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떤 아이는 크레파스를 선택했고, 어떤 아이는 색종이를 오려 붙이는 방식을 골랐습니다. 표현 방식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아이들이 스스로 보여준 셈입니다.

그림책을 활용한 창의 표현 활동이 유아의 언어 발달과 상상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교육 현장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유아교육학회). 솔직히 저도 처음엔 "그림 그리기 활동이 이렇게까지 효과가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실제로 활동을 마친 아이들이 자신의 그림책을 친구들 앞에서 읽어주는 모습을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림책 만들기 활동에서 각 단계를 구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구상 단계: 이야기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발상하고 글이나 메모로 정리
  • 썸네일 스케치·스토리보드 단계: 장면 구성과 흐름을 시각적으로 배치
  • 더미북 단계: 가제본 형태로 묶어 책처럼 넘겨보며 글과 그림의 조화를 점검
  • 채색 단계: 매체와 기법을 선택해 그림을 완성
  • 디자인·교정 단계: 글자 배치, 판권, 오탈자 교정 등 편집 작업

 

인쇄와 제본, 책이 손에 닿기까지

 

채색이 끝난 그림을 출판사에 전달하면 책 디자이너가 이를 스캔하여 디자인 작업에 들어갑니다. 이 단계에서는 판형(책의 크기와 비율), 서체, 면지와 속표지 디자인, 종이 재질 등이 결정됩니다. 판형이란 책의 물리적 크기와 가로세로 비율을 뜻하며, 그림책의 경우 그림의 구도와 분위기에 맞는 판형을 선택하는 것이 독자의 경험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인쇄 단계에서는 CMYK 색분해 방식이 사용됩니다. CMYK란 Cyan(청록), Magenta(자홍), Yellow(노랑), Key(검정)의 네 가지 잉크 색을 조합하여 세상의 모든 색을 만들어내는 인쇄 방식입니다. 인쇄물을 확대해서 보면 작은 점들이 네 가지 색으로 겹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CMYK 방식의 특징입니다. 눈의 착시를 이용해 멀리서 보면 하나의 색으로 인식되도록 한 원리입니다.

그림책은 보통 최소 1,000부 이상을 한 번에 인쇄하기 때문에, 인쇄 이후의 수정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인쇄 전 교정·교열(proofreading & copyediting) 단계가 매우 중요합니다. 교정이란 글자나 문장의 오류를 바로잡는 작업이고, 교열이란 문장의 표현과 내용의 정확성을 검토하는 작업입니다. 글자 수가 적은 그림책에서 오탈자가 하나라도 발견된다면 독자의 신뢰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제본 단계에서는 인쇄된 낱장 종이를 재단하고 순서대로 정렬한 뒤 실로 꿰고 책 등에 접착제를 발라 하나로 묶습니다. 그 위에 두꺼운 표지를 씌우면 비로소 한 권의 그림책이 완성됩니다. 이렇게 완성된 책은 출판사 창고나 도매상 창고로 이동한 뒤 서점의 주문을 기다립니다.

유아교육 현장에서 그림책의 역할은 단순한 읽기 자료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교육부의 2019 개정 누리과정에 따르면 유아가 그림책을 통해 의사소통 능력과 예술적 표현 능력을 동시에 발달시킬 수 있도록 환경을 구성하는 것이 권장됩니다(출처: 교육부). 저도 이 방향에 동의합니다.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만큼이나,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보는 경험이 교육적으로 훨씬 더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한 권의 그림책이 완성되기까지 이렇게 많은 단계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나면,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펼칠 때 느끼는 감각이 달라집니다. 유치원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만들게 하는 활동이 단순한 미술 시간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작가들이 거치는 이 과정을 아이들 수준에 맞게라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자신만의 더미북을 손에 쥐고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를 읽어주던 그 순간, 저는 이 활동이 왜 의미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그림책을 읽히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K1GeGkFrPO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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