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처음에는 그냥 책을 펼쳐 읽어 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 앞에 앉아 "자, 책 읽자" 하고 펼치면 알아서 집중해 주겠거니 했는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딸이 자꾸 딴 곳을 보거나 자리를 피해 버리더라고요. 그때서야 그림책 읽기에도 방법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흥미 유발: 아이가 먼저 손 뻗게 만드는 법
그림책 읽기에서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개념이 바로 흥미 유발(interest triggering)입니다. 흥미 유발이란 아이 스스로 책에 호기심을 갖고 가까이 다가오게 만드는 사전 단계를 말합니다. 아이에게 "와서 앉아, 책 보자"라고 불러 세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접근입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효과가 확실히 달랐습니다. 새 그림책을 꺼내면서 "이거 봐봐, 여기 뭔가 들고 있는 것 같은데?"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 딸이 어느새 옆에 와서 기웃거리더라고요. 반면 "책 읽을 시간이야"라고 선언했을 때는 열에 아홉은 그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연령이 어린아이일수록 이 흥미 유발 단계에 좀 더 공을 들여야 합니다. 그림책 표지만으로 호기심을 자극하기 어려운 경우, 책 속 소재와 연결되는 실물 소품을 미리 꺼내 두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집을 소재로 한 그림책이라면, 작은 상자나 조개껍데기 같은 물건을 먼저 보여 주며 아이의 관심을 끌어낸 뒤 자연스럽게 책으로 연결하는 식입니다. 유치원 교사로 일하면서도 이 방법을 자주 활용했는데, 같은 책이어도 도입부 방식에 따라 아이들의 반응이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유아 독서 연구에서 말하는 책 읽기 전 활성화(pre-reading activation) 전략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pre-reading activation이란 본격적인 읽기 전에 배경 지식이나 감각적 자극을 통해 아이의 인지적 준비를 돕는 과정입니다. 아이의 뇌가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상태에서 책을 펼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이해도와 집중도에서 차이가 납니다(출처: 한국어린이교육문화연구원).
흥미 유발 단계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그림책 표지를 보며 "이게 뭐지?" 같은 열린 질문으로 호기심 자극하기
- 책 속 소재와 연결된 실물 소품을 먼저 꺼내 보여 주기
- 손인형이나 캐릭터 인형을 활용해 책 등장인물과 연결하기
- 아이의 실제 경험과 책 내용을 미리 연결하는 한 마디 건네기
상호작용: 읽는 중과 읽은 후가 진짜 핵심입니다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어 주는 행위를 소리 내어 읽기(read-aloud)라고 합니다. read-aloud란 단순히 글자를 읽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림과 텍스트를 함께 짚어 가며 아이와 의미를 나누는 상호작용적 읽기 방식입니다. 이 과정에서 표지, 책 등, 면지(endpaper)까지 꼼꼼하게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면지란 표지 안쪽과 본문 사이에 있는 페이지로, 작가가 이야기의 분위기나 복선을 담아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솔직히 이건 저도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면지를 그냥 넘겨 버렸는데, 어느 날 딸이 "엄마, 여기 뭐야?" 하고 짚어 내더라고요. 그때부터 표지부터 뒤표지까지 한 장도 빠짐없이 함께 보기 시작했고, 그러고 나니 본문에서 나오는 그림 속 작은 캐릭터나 반복되는 장치들을 아이가 먼저 발견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림책을 다 읽은 뒤에는 독후 상호작용(post-reading interaction)이 이어집니다. 독후 상호작용이란 책을 다 읽고 나서 아이의 감상과 생각을 끌어내는 대화 과정을 말합니다. 이때 "이건 무슨 색이야?", "주인공 이름이 뭐야?" 같은 사실 확인형 질문은 피해야 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질문은 아이를 시험받는 기분이 들게 해서 오히려 책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렸습니다.
대신 "왜 그럴까?", "너라면 어떻게 할 거야?"처럼 정답이 없는 열린 질문을 건네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아직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연령이라면, 부모가 먼저 자신의 감상을 말해 주는 방식으로 모델링해 주면 됩니다. "엄마는 이 장면이 제일 재미있었어. 우리도 언제 한번 해보자"처럼요. 이렇게 감상을 반복적으로 들려주면 아이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시점이 왔을 때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나갑니다.
실제로 해보니 독후 활동(만들기, 그리기 등)은 매일 하지 않아도 책에 대한 흥미를 유지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매일 독후 활동이 의무처럼 느껴지면 그림책 읽기 자체가 피로해지더라고요. 국내 유아 독서 교육 연구에서도 강압적이거나 과도한 독서 활동이 오히려 독서 흥미를 저해할 수 있다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독서학회). 꾸준한 습관이 먼저이고, 독후 활동은 그다음 단계에서 자연스럽게 더해 가도 충분합니다.
그림책 읽기가 이미 일상에 자리잡혔다면, 날짜와 책 제목을 간단히 기록하는 독서 일기를 써 보는 것도 추천할 만합니다. 저는 달력에 그날 읽은 그림책 제목을 적어 두었는데, 한 칸 한 칸 채워질수록 딸도 저도 뿌듯함이 쌓였습니다. 쌓인 기록을 함께 넘겨보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그림책 시간이 되기도 했고요.
그림책 한 권 스페셜 타임이 특별한 이유는 거창한 준비가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매일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는 부담도 없습니다.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아이의 반응이 날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걸 관찰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시간 동안 부모와 아이가 같은 방향을 보며 나누는 교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아이에게 책은 즐거운 것이라는 인상이 조금씩 쌓여 갑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nvxUX1jaHWY&list=PLtDQxB_cXx8-54f9eerDGRqorp1eXV0tm&index=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