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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읽기 상호작용 (상호작용의 질, 표현언어능력)

by seulki87 2026. 5. 20.

유아 교사로 일하면서 종이책과 전자책 중 어느 쪽이 아이들 언어 발달에 더 좋은지 궁금했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답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매체 자체보다 그 안에서 어떤 대화가 오가느냐가 훨씬 더 결정적이었거든요.

 

상호작용의 질

 

그림책 읽기 상호작용, 종이책 vs 전자책, 상호작용의 질이 달라진다

 

처음 전자책을 교실에 들였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평소 책 읽기에 전혀 관심 없던 아이가 화면 앞에서 눈을 빛내며 등장인물 대사를 따라 하는 걸 보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소리 효과와 움직이는 그림이 만들어내는 몰입감은 종이책이 쉽게 따라갈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화면 효과에 집중하다 보니 이야기 내용에 대한 깊은 대화가 줄어드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주인공이 왜 저런 표정을 지었을까?"라고 물으면 종이책을 읽을 때는 한참 그림을 들여다보며 긴 문장으로 자기 생각을 말하던 아이가, 전자책에서는 "몰라요" 한마디로 끝내는 장면이 종종 있었습니다.

 

이 차이를 설명해 주는 개념이 바로 질적 상호작용(Qualitative Interaction)입니다. 질적 상호작용이란 단순히 책을 읽었는가의 빈도가 아니라, 읽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주고받는 깊이 있는 소통을 의미합니다. 반면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래 함께 읽었는가는 양적 상호작용(Quantitative Interaction)으로 구분됩니다. 이 두 가지를 나누어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종이책과 전자책 모두 양적·질적 상호작용 수준이 높을수록 유아의 표현언어능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어머니의 인식도 상호작용의 질에 직접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종이책을 즐겁고 필요한 것으로 여기는 어머니일수록 실제로 아이와 더 깊고 자주 대화를 나눴고, 전자책에서는 전자책의 필요성과 이점을 인정하는 어머니일수록 전자책 읽기에서도 풍부한 상호작용을 끌어냈습니다. 어른의 태도가 독서 경험 전체의 분위기를 바꾼다는 걸 현장에서도 느꼈습니다. 아이보다 교사인 제가 먼저 그림책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일 때, 아이들의 반응이 눈에 띄게 달라지더라고요.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종이책: 그림을 가까이서 함께 관찰하며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고, 질적 상호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경향이 있음
  • 전자책: 멀티미디어 효과로 책에 관심이 적은 유아의 참여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지만, 화면 자극에 집중하다 이야기 깊이 들어가는 대화가 줄어들 수 있음
  • 공통점: 어떤 매체든 어른이 함께 상호작용할 때 유아의 표현언어능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침

 

표현언어능력, 결국 대화의 깊이가 만든다

 

표현언어능력(Expressive Language Ability)이란 유아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구어로 정확하게 전달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단순히 단어를 많이 아는 것과는 다릅니다. 쉽게 말해, "사과 먹고 싶어"가 아니라 "배가 고프니까 사과를 먹고 싶은데, 지금 엄마가 바쁜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어"처럼 이유와 상황, 감정을 연결해서 말하는 능력입니다. 연구에서는 만 5세 유아를 대상으로 대립·계기·인과적 연결어미를 활용한 복문 표현 능력을 측정하는 PRES(취학 전 아동의 수용언어 및 표현언어 발달 척도)를 사용하여 이를 평가했습니다. PRES란 유아의 언어 발달 수준을 수용언어와 표현언어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측정하는 표준화 검사 도구입니다(출처: 국립특수교육원).

 

제가 직접 써봤는데, 그림책을 함께 읽으며 "왜 그랬을까?", "다음엔 어떻게 될 것 같아?"라고 물었을 때 아이들이 점점 더 긴 문장으로 대답하기 시작하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어 한두 개로 대답하던 아이가 몇 주 후에는 "주인공이 무서워서 도망갔는데, 근데 사실 그 괴물은 착한 거였잖아요"처럼 인과 관계를 스스로 연결하는 문장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문해 능력(Literacy)의 기초가 이 시기에 형성된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문해 능력이란 글자를 읽고 쓰는 능력을 넘어, 텍스트의 의미를 이해하고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능력 전반을 가리킵니다. 그림책 읽기가 단순한 취침 전 루틴이 아니라 언어 발달의 토대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만 3~5세 유아의 가정 내 독서 활동 참여율은 꾸준히 높은 편이지만, 실질적인 대화 상호작용을 동반하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난 바 있습니다(출처: 육아정책연구소).

 

전자책이 언어 발달에 부정적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 단정 짓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전자책도 교사나 부모가 화면 효과에만 맡겨두지 않고 "저 소리 들었어? 왜 저런 소리가 날까?"처럼 함께 반응하고 질문을 이어가면, 종이책 못지않은 언어 경험이 됩니다. 오히려 책에 흥미가 적던 아이가 전자책을 통해 처음으로 이야기에 빠져드는 장면을 보면, 전자책이 독서 습관 형성의 입구 역할을 한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종이책이냐 전자책이냐의 선택이 아니라, 어떤 매체를 쓰든 아이와 함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대화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게 제가 현장에서 수없이 확인한 결론입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매체로 시작해서 점점 풍부한 질문과 대화를 쌓아가는 방식, 그것이 표현언어능력을 키우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가정에서 그림책을 읽는다면, 오늘 딱 한 가지만 더해보시길 권합니다. 책을 덮고 나서 "오늘 이야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야?"라고 한 마디만 물어보는 것입니다.

 

참고: https://catholic.dcollection.net/public_resource/pdf/000002295657_2026052012201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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