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란 나비 한 마리가 파란 나비를 만나는 순간, 교실이 "초록색이다!"라는 탄성으로 가득 찼습니다. 석정원 작가의 그림책 '나비야 다 모여'는 나비의 성장과정과 색의 혼합을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작품입니다. 저도 유아들과 직접 이 그림책을 펼쳐 보며, 단순한 그림책 읽기가 어떻게 살아있는 놀이로 바뀌는지 경험했습니다.
나비 성장과정을 몸으로 익히는 도입 놀이
“알이 어떻게 나비가 되는지 알아?” 이 한 마디면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집니다. 저는 그림책을 펼치기 전에, 나비의 변태 과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도입 활동부터 시작합니다. 변태란 알에서 애벌레, 번데기를 거쳐 성충인 나비로 변화하는 발달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 개념을 말로 설명하면 금방 흘러가지만, 몸으로 표현하는 순간 아이의 기억 속에 훨씬 또렷하게 남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음악에 맞춰 자유롭게 움직이다가 “알!”이라는 신호에 “얼음얼음얼음” 하며 멈추고, “애벌레!”에는 “꿈틀꿈틀꿈틀”, “번데기!”에는 “쑥쑥쑥”, “나비!”에는 “훨훨훨”을 외치며 동작으로 표현합니다. 이후 가위바위보를 통해 단계별로 진화하는 놀이로 이어지는데, 알 → 애벌레 → 번데기 → 나비로 성장하는 구조 자체가 자연스럽게 학습 흐름이 됩니다.
제가 직접 해보니 흥미로운 점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승패보다 동작 표현에 더 집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움직여야 하지?”를 고민하며 몸을 쓰는 과정 자체가 놀이의 중심이 된 것입니다. 정확한 소리와 움직임을 함께 표현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규칙이, 단순한 게임을 의미 있는 학습 경험으로 바꿔주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활동의 핵심은 ‘선행 경험 만들기’입니다. 아이들은 이미 몸으로 나비의 성장 과정을 한 번 살아본 상태에서 그림책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책 속 장면이 낯선 정보가 아니라, “아까 우리가 했던 그거!”로 연결됩니다. 제 경험상 이 한 번의 도입이 이후 그림책 이해도와 몰입도를 확실하게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색혼합 원리가 숨어 있는 그림책 본문 읽기
그림책을 펼치면 이야기는 노란 나비 한 마리로 시작됩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파란 나비, 빨간 나비가 등장하고, 두 나비의 날개가 겹치는 순간 전혀 다른 색이 만들어집니다. 여기서 색혼합이란 두 가지 이상의 색이 만나 새로운 색으로 변화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이 그림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이 원리를 설명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저는 아이들과 책을 읽을 때, 페이지를 넘기기 직전에 꼭 한 번 멈춥니다. 그리고 “노란 나비랑 파란 나비가 만나면 무슨 색이 될까?” 하고 물어봅니다. 아이들의 반응은 늘 다양합니다. “보라색!”, “그대로 노란색!”처럼 각자의 생각이 쏟아지고,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초록색이다!”라는 탄성이 터집니다. 이 짧은 과정 안에 ‘예측 → 확인 → 수정’이라는 사고 흐름이 자연스럽게 담깁니다. 제 경험상, 이 한 번의 멈춤이 단순한 읽기를 탐구 활동으로 바꾸는 핵심 장치였습니다.
또 하나 눈여겨볼 부분은 본문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의태어입니다. 나비의 날갯짓을 “팔랑팔랑”, “파라랑파라랑”처럼 다양한 소리로 표현하는데, 아이들과 리듬을 살려 함께 읽어보면 반응이 확연히 달라집니다. 단순히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몸과 소리로 함께 느끼는 경험이 되기 때문입니다. 유아기에는 이런 의태어와 의성어 노출이 어휘 확장과 언어 감수성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꾸준히 보고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유아교육학회).
결국 이 그림책 읽기의 핵심은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게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색이 바뀌는 순간을 예측하고 확인하는 경험, 그 과정 자체가 가장 강력한 배움이 됩니다.
셀로판지로 직접 만드는 색혼합 나비 놀이
그림책을 다 읽고 나면, 저는 바로 이 후속 활동으로 이어갑니다. 개인적으로 이 단계가 수업의 핵심이라고 느꼈습니다. 아이들에게 3원색(빨강·파랑·노랑) 셀로판지로 만든 나비를 나눠주고, 빨대를 붙여 직접 들고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합니다. 3 원색이란 다른 색을 섞어 만들 수 없는 기본 색으로, 이 세 가지 조합만으로도 다양한 색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활동은 “나비야 다 모여!”라는 구호와 함께 세 가지 방식으로 확장됩니다. 색깔별로 모이기, 수에 맞춰 모이기, 그리고 모양 만들기까지 단계적으로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놀이의 밀도가 높아집니다. 특히 “주황 나비 모여!”처럼 새로운 색을 제시했을 때, 아이들이 스스로 짝을 찾아 날개를 겹치는 장면은 늘 교실 분위기를 가장 활발하게 만듭니다.
제가 해보니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건 단연 색 조합 활동이었습니다. “초록 나비 만들어봐!”라고 하면 파란 나비를 든 아이와 노란 나비를 든 아이가 서로를 찾기 위해 교실을 뛰어다닙니다. 흥미로운 점은, 몇 번 경험하고 나면 교사의 안내 없이도 아이들이 스스로 전략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나는 파랑이니까 노랑 친구를 찾아야 해!”라고 말하며 움직이는 순간, 학습이 놀이 속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활동의 가장 큰 장점은 ‘눈으로 본 것’을 ‘몸으로 다시 확인한다’는 점입니다. 그림책에서 본 색혼합이 실제로 눈앞에서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 내가 직접 참여하게 됩니다. 제 경험상, 이 과정을 거친 아이들은 단순히 “노랑+파랑=초록”을 아는 수준을 넘어, 색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감각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결국 이 놀이는 색 개념 학습에 그치지 않습니다. 또래와 협력하고, 규칙을 이해하고,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경험까지 함께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활동을 단순한 미술 놀이가 아니라, 아이의 사고와 관계 맺는 방식을 동시에 키워주는 통합 놀이로 보고 있습니다.
나만의 나비 꾸미기로 마무리하는 창의 표현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에는 다양한 무늬를 가진 나비들이 한꺼번에 펼쳐집니다. 이 장면을 본 아이들의 반응은 언제나 "나도 저런 나비 만들고 싶어요!"입니다. 저도 그 반응을 기대하며 투명 나비 모양 필름에 매직으로 자유롭게 무늬를 꾸미는 시간을 마지막에 배치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미술 활동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유아 미술 교육에서 자유 표현(自由表現)이란 결과물의 완성도보다 표현 과정에서 아이가 경험하는 선택과 결정을 중시하는 접근 방식입니다. 어떤 색을 쓸지, 어떤 모양을 그릴지 모두 아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교육부의 누리과정 해설서에서도 유아의 자기표현과 창의적 경험을 예술경험 영역의 핵심 목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출처: 교육부).
완성된 나비를 들고 "내 나비는 어디로 여행 갈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아이들의 상상이 또 한 번 활짝 펼쳐집니다. 저는 이 질문 하나로 수업이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꽃밭으로 간다는 아이, 우주로 날아간다는 아이, 할머니 댁으로 간다는 아이까지 각자의 나비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게 됩니다.
그림책 한 권이 이렇게까지 뻗어나갈 수 있다는 것, '나비야 다 모여'를 직접 활용해보기 전까지는 솔직히 잘 몰랐습니다. 도입의 신체 표현 놀이부터 색혼합 탐색, 창의 미술, 언어 표현까지 하나의 그림책이 이렇게 다층적인 경험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봄 학기 첫 그림책으로 고민 중이라면 한 번 펼쳐보시길 권합니다. 교실이 분명 달라집니다.
'나비야 다 모여' 활동이 있었던 날은 유난히 교실이 많이 움직였습니다. 아이들은 의자에 오래 앉아 있지 않았고, 팔을 흔들며 나비가 되었다가 갑자기 색을 섞어보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어떤 아이는 자신이 만든 색깔에 이름까지 붙였습니다. "이건 딸기우유 나비색이야", "이건 비 온 뒤 하늘색이야" 같은 말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좋은 그림책 놀이는 아이들을 조용히 집중시키는 활동이 아니라, 아이 안에 있던 감각과 표현을 밖으로 꺼내 움직이게 만드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이 책은 정해진 결과물을 만들게 하기 보다, 아이마다 다른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게 열려 있다는 점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누군가는 몸으로 먼저 반응하고, 누군가는 색으로 또 다른 아이는 이야기로 자기 나비를 만들어 냈으니까요.
아마 그래서 이 그림책 놀이가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활동이 끝난 뒤에도 교실 어딘가에는 아직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느낌이 오래 남아 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