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어색하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솔직히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림책 한 권이 그 어색함을 단번에 날려버렸습니다. 샘 맥브래트니 작가의 『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는 아기 토끼와 아빠 토끼가 서로의 사랑 크기를 몸짓과 말로 겨루는 이야기입니다. 단순한 줄거리 같지만, 이 그림책이 아이와 어른 사이에서 만들어내는 감정의 온도는 생각보다 훨씬 뜨겁습니다.
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 그림책 읽기, 그냥 읽으면 절반만 즐기는 겁니다
제가 처음 이 그림책을 아이들과 읽었을 때, 그냥 소리 내어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읽는 방식을 조금 바꾸니 반응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 그림책에는 '이만큼', '달까지'처럼 감정을 크기로 표현하는 핵심 어휘들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그리고 글자 크기와 색깔이 서로 달라져 있어, 시각적 단서를 목소리 크기와 연결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것을 그림책 읽기 이론에서는 멀티모달 리터러시(multimodal literacy)라고 부릅니다. 멀티모달 리터러시란 텍스트, 이미지, 소리, 몸짓 등 여러 감각 채널을 동시에 활용하여 의미를 읽고 표현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그림도 읽고 글자 크기도 읽고 목소리 높낮이도 함께 쓰는 방식입니다.
제가 직접 아이들과 읽어보니, 아빠 토끼가 "나는 너를 이만큼 사랑한단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글자 크기가 커지는 대로 목소리도 같이 키우자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기 시작했습니다. 반대로 마지막에 아빠 토끼가 잠든 아기 토끼에게 속삭이는 장면에서는 목소리를 아주 작게 줄였는데, 그 순간 교실이 한 번에 조용해졌습니다. 읽는 방식 하나가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는 경험이었습니다.
표지를 보며 아이들에게 먼저 질문을 던지는 것도 효과적이었습니다. "이 두 토끼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것 같아?" 하고 물으면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상상해 냅니다. 이처럼 책을 펼치기 전부터 예측하고 추론하는 과정을 내러티브 예측(narrative prediction)이라고 합니다. 내러티브 예측이란 이야기의 맥락과 그림 단서를 보고 앞으로 전개될 내용을 상상하는 사고 활동으로, 언어 이해력과 창의적 사고력을 동시에 자극하는 방법입니다.
이 그림책을 읽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글자 크기와 색깔의 변화를 목소리 크기와 연결해서 읽기
- 표지와 면지 색깔을 보며 아이와 먼저 이야기 나누기
- 각 장면에서 등장인물의 표정과 몸짓을 관찰하고 소리로 흉내 내기
- 책을 다 읽은 뒤 "나는 ○○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로 이어지는 대화 유도하기
아이들과 함께 읽는 그림책은 이렇게 감각을 다양하게 쓸수록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실제로 유아 언어 교육 분야에서는 소리와 이미지를 함께 활용하는 읽기 방식이 어휘 습득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어린이교육학회).
정서 발달과 사랑 표현, 그림책이 할 수 있는 일
이 그림책이 단순한 자장가 이야기가 아닌 이유가 있습니다. 아기 토끼는 팔을 벌리고, 점프를 하고, 강까지 가는 거리를 끌어와서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아빠 토끼는 언제나 그보다 조금 더 크게 돌려줍니다. 이 주고받음의 구조가 아이들에게 애착 형성(attachment formation)의 감각을 자연스럽게 심어줍니다. 애착 형성이란 영유아가 주 양육자와의 반복적인 정서적 교류를 통해 안정감과 신뢰감을 발달시키는 심리적 과정을 말하며, 이후 사회성과 정서 조절 능력의 기반이 됩니다.
제가 직접 이 그림책을 읽고 나서 아이들에게 "너는 엄마나 아빠를 얼마나 사랑해?"라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예상 밖이었던 건, 아이들이 거의 자동으로 몸을 쓰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만큼이요!" 하며 팔을 벌리거나, 펄쩍 뛰어오르며 "하늘까지요!" 하고 외쳤습니다. 어떤 아이는 "교실만큼이요"라고 했고, 한 아이는 조용히 "말로는 표현 못 해요"라고 했는데 그 말이 오히려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그림책 읽기 이후 활동으로는 도화지에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고 그 옆에 짧은 문장을 써보는 것을 해봤습니다. "엄마를 달만큼 사랑해요", "아빠를 바다만큼 좋아해요"처럼 아이들이 고른 비유들이 저마다 달랐습니다. 이 활동이 좋았던 이유는 아이들이 감정을 구체적인 언어로 전환하는 연습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를 정서 언어화(emotional verbalization)라고 합니다. 정서 언어화란 내면의 감정 상태를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능력으로, 공감 능력과 자기 이해 능력 발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유아기 정서 발달 측면에서 보면, 어린 시기의 감정 표현 경험이 이후 사회적 관계의 질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국내 육아 정책 연구 자료에 따르면, 영유아기에 감정 표현을 충분히 경험한 아이들이 또래 관계에서 갈등을 더 잘 조절하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육아정책연구소). 그림책은 이 감정 표현의 출발점으로 더없이 좋은 도구입니다.
이 그림책을 특별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는, 아빠 토끼가 경쟁하듯 더 큰 사랑을 표현하면서도 결코 아기 토끼의 표현을 깎아내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보다 훨씬 더 사랑한단다"라는 말은 이기는 게 아니라 감싸는 표현입니다. 제 경험상 이 장면에서 아이들이 가장 오래 그림을 들여다봤습니다. 아빠 토끼의 표정을 읽으려는 것처럼요.
『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는 가족 간의 사랑을 말로 꺼내기 어려운 분들에게도 자연스러운 대화의 물꼬를 터줍니다. 그림책을 덮은 뒤 아이와 말없이 한 번 꼭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됩니다. 아직 이 그림책을 읽지 않으셨다면, 오늘 저녁 잠자리에서 한 번 꺼내보시길 권합니다. 읽고 난 뒤의 분위기가 분명 달라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