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처음에 소리를 주제로 한 그림책 활동이 이렇게까지 깊어질 수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그냥 책 읽고, "어떤 소리 들려요?" 한 번 물어보는 정도로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아이들과 함께 귀를 기울여 보니, 제가 먼저 놀랐습니다.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소리들이 교실 안에 이렇게 많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요.

들리니? 와 들어봐! 들리니? 그림책 놀이, 귀 기울이기
혹시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잠깐 멈추고 주변 소리를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대부분은 의식적으로 멈추지 않으면 그냥 흘려보내게 됩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지금 어떤 소리가 들려?"라고 물으면 금방 대답할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해보니 처음엔 조용했습니다. 그 침묵이 어색해서 제가 먼저 입을 열려고 했는데, 잠시 기다렸더니 한 아이가 "에어컨이 위잉 하는 소리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하나둘씩 "밖에서 새 우는 소리요", "시계 소리요", "친구가 종이 넘기는 소리요" 하며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청각적 주의집중(auditory attention)의 힘입니다. 청각적 주의집중이란 외부 자극 중에서 특정 소리에 의도적으로 집중하는 인지 능력을 말합니다. 유아기에는 이 능력이 아직 발달 중이기 때문에, 명시적인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훈련해 줄 수 있습니다. 국내 유아교육 현장에서 감각 통합 활동이 강조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출처: 한국유아교육학회).
『들어 봐! 들리니?』라는 그림책은 바로 이 지점을 건드립니다. 초인종 소리, 자전거 벨 소리, 빗방울이 울타리에 부딪히는 소리처럼 일상 속에 있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놓치는 소리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냥 읽고 끝나는 책이 아니라, 읽는 동안 아이들이 스스로 소리를 상상하고 찾아내도록 유도하는 구조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신문지 활동, 해보기 전엔 반신반의했습니다
신문지 한 장으로 빗소리를 만들 수 있다고 하면, 처음엔 "에이, 설마" 싶은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직접 해보니 전혀 달랐습니다.
아이들에게 신문지를 한 장씩 나눠주고 "비 오는 날 소리를 만들어 보세요"라고 했을 때, 아이들이 만들어낸 소리의 종류가 정말 달랐습니다. 어떤 아이는 신문지를 펼쳐서 살살 흔들며 이슬비 소리를 표현했고, 어떤 아이는 접어서 탁탁 두드리며 소나기 소리를 만들었습니다. 한 아이는 신문지를 빠르게 비벼 마치 우산 위로 쏟아지는 빗소리를 재현했습니다.
이 활동에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의성어 모방(onomatopoeic imitation)입니다. 의성어 모방이란 자연이나 사물의 소리를 음성이나 몸, 도구를 통해 유사하게 재현하는 표현 행위를 말합니다. 유아의 언어 발달과 창의적 표현력을 동시에 자극한다는 점에서 유아교육에서 적극 권장되는 접근입니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인 점은 아이들이 서로의 소리를 보고 자극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제히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며 한 명씩 자신이 만든 소리를 공유했는데, 앞 친구의 방식에 자극받아 자기 차례가 왔을 때 즉흥적으로 다른 방법을 시도하는 아이들이 꽤 있었습니다. 이른바 즉흥 창작(improvisation)이 자연스럽게 일어난 순간이었습니다.
비 오는 날 소리를 만들 때 활용할 수 있는 신문지 표현 방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신문지를 살살 흔들기 → 이슬비처럼 가늘고 부드러운 빗소리
- 신문지를 접어 탁탁 두드리기 → 소나기처럼 굵고 강한 빗소리
- 신문지를 빠르게 비비기 → 우산 위로 쏟아지는 빗소리
- 신문지를 구겨서 펼치기 →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 또는 바람 소리
포스트잇으로 교실 소리 지도 만들기
그림책 활동이 끝난 뒤 저는 한 가지를 더 해봤습니다. 아이들에게 포스트잇을 나눠주고 "이 교실에서 내 소리를 들려달라고 하는 것들을 찾아보자"라고 했습니다. 처음엔 아이들이 어리둥절해했는데, 조금 지나자 교실 곳곳에 귀를 갖다 대기 시작했습니다.
책장에 귀를 기울이는 아이, 콘센트 앞에서 "하"하고 숨을 내쉬며 소리를 확인하는 아이, 낡은 의자를 끄덕이며 삐걱소리를 찾아낸 아이. 그 광경을 보면서 제가 예상 밖으로 뭉클해졌습니다. 아이들이 그냥 소리를 찾는 게 아니라, 사물에 집중하고 그것과 조용히 대화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이 과정은 감각 탐색(sensory exploration)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감각 탐색이란 시각, 청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 기관을 활용하여 환경을 능동적으로 탐구하는 학습 방식을 말합니다. 유아기의 감각 탐색 경험은 인지 발달과 정서 발달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육아정책연구소).
나중에 아이들이 포스트잇을 붙인 자리를 보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은, 그 어떤 발표 수업보다 생동감이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바람이 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났어요", "전기가 흐르는 소리를 들었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습니다. 이 아이들이 발견한 소리 지도는 교실 안에서 가장 작고 조용한 것들에 대한 경이로움이었습니다.
감각 탐색이 그림책 활동을 살리는 이유
그림책을 읽는 것과 그림책을 '경험하는 것'은 다릅니다. 이 차이를 저는 이 활동을 통해 처음으로 제대로 느꼈습니다.
글자 없이 그림만 있는 장면에서 아이들에게 신문지로 소리를 입히게 하는 방식, 즉 그림책 상호작용 읽기(interactive picture book reading)는 단순히 내용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아이들이 이야기 속에 직접 참여하게 만드는 접근입니다. 여기서 상호작용 읽기란 독자가 텍스트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과 경험을 연결해 능동적으로 의미를 구성하는 읽기 방식을 말합니다.
아이들이 평소에 무심코 지나치던 소리들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과정은, 소리라는 감각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읽는 연습이기도 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활동 이후에 아이들은 교실 밖에서도 "저 소리 뭐예요?" 하고 먼저 물어오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그 작은 변화가 사실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소리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멈추지 않았을 뿐입니다. 『들어 봐! 들리니?』, 『들리니?』 같은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그 멈춤의 기술을 가르쳐줍니다. 유아들과 함께 이런 활동을 고민하고 계신다면, 거창한 준비물 없이 신문지 한 장과 포스트잇 몇 장으로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아이들이 찾아낸 소리에 놀라는 건 아마 선생님 본인이 먼저일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j6sBD_iNma8&list=PLYL5HwiWwpBJx8DUDqZ_fbmYC_bHdqH1_&index=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