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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리오니 그림책 (우화 작가, 독특한 그림 언어, 4주 수업)

by seulki87 2026. 4. 14.

 

유치원에서 'Swimmy'를 아이들과 함께 펼쳤던 날, 저도 처음엔 "이건 그냥 물고기 이야기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쏟아내는 질문들을 듣다 보니 제가 오히려 부끄러워졌습니다. 레오 리오니의 그림책은 겉으로는 단순한데, 한 꺼풀 벗겨보면 어른도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레오 리오니 그림책, 49살에 시작한 두 번째 인생, 그리고 우화 작가의 탄생

아이들과 Swimmy를 읽어주던 날이었습니다. 작은 물고기들이 모여 하나의 큰 물고기가 되는 장면에서, 아이들이 한 마리 한 마리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내가 할게”, “이건 너야” 하면서요. 저는 그 모습을 보며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무언가가 전달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작가를 알고 나서야 그 이유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Leo Lionni는 그림책 작가로서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출발한 인물입니다. 49살이 되어서야 첫 그림책을 세상에 내놓았는데, 그 계기가 흥미롭습니다. 기차 여행 중 손주들을 달래기 위해 잡지를 찢어 즉석에서 이야기를 만들어준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때 탄생한 작품이 바로 『파랑과 노랑』이었고, 이 책은 큰 반향을 일으키며 그의 새로운 인생을 열었습니다. 저 역시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이 나이에 새로운 길을 시작할 수 있다고?”라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묘한 용기를 느꼈습니다.

 

그의 작품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우화’ 형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이나 작은 존재들을 통해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방식인데, 아이들과 읽다 보면 단순한 교훈을 넘어 감정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전달됩니다. 특히 그의 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어딘가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껴지는데, 그 이유를 알고 나니 더 인상 깊었습니다.

 

Leo Lionni는 어린 시절부터 곤충, 물고기, 조개껍질 같은 자연물을 모으며 지냈다고 합니다. 그의 방이 마치 작은 자연사 박물관 같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림책 속 생쥐와 물고기, 개구리들이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오랫동안 함께해 온 ‘친숙한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그의 책을 읽을 때 등장인물을 하나의 이야기 속 존재가 아니라, 마치 친구처럼 대합니다. 제가 경험한 것처럼 이름을 붙이고, 감정을 이입하고, 이야기를 이어가려 합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이 작가의 그림책이 단순히 교훈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경험하게 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의 작품을 볼 때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보다 “왜 이렇게까지 다정하게 느껴질까?”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아마 그 답은, 아주 오랜 시간 쌓여온 그의 시선과 애정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레오 리오니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자아 정체성 탐구: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 속하는가
  • 차이와 공존: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갈 것인가
  • 세계 평화와 반전: 욕심과 갈등이 아닌 나눔과 평등에 대한 염원

이 주제들은 그가 유대인으로서 나치의 박해를 피해 1939년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전쟁의 공포를 직접 겪은 사람이 그림책에 담은 평화의 메시지는, 글자 수가 적을수록 오히려 더 깊이 울립니다.

콜라주 기법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그림 언어

아이들과 Swimmy를 함께 읽다가, 한 아이가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거 진짜 풀이야?” 저는 순간 웃음이 나왔지만, 그 질문이 꽤 인상 깊게 남았습니다. 분명 종이에 인쇄된 그림인데, 아이의 눈에는 실제 바닷속 장면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Leo Lionni의 그림 방식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종이를 찢고 붙이는 ‘콜라주(collage)’ 기법을 사용합니다. 이 기법은 물감을 칠하는 것과 달리, 재료 자체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에 화면에 독특한 입체감과 생동감을 만들어냅니다.

 

아이들과 책을 볼 때 그 차이는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바닷속 해초나 물결 표현을 보며 아이들은 그것을 ‘그림’으로 인식하기보다, 실제 존재하는 무언가처럼 받아들입니다. 제가 경험한 것처럼 “이거 진짜야?”라는 질문이 나오는 순간, 이 기법이 단순한 표현 방식이 아니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장치라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그의 작품인 '프레드릭'이나 '파랑과 노랑'을 보면, 가위로 자른 듯한 정형적인 선이 아니라 손으로 찢은 듯한 자연스러운 경계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 불규칙함이 오히려 따뜻하고 유기적인 느낌을 만들어내고, 화면 전체에 생명력을 더해줍니다. 저는 이걸 보며 ‘정확하게 그린 그림’보다 ‘살아 있는 그림’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콜라주 기법은 이후 많은 그림책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Eric Carle나 Ezra Jack Keats 같은 작가들이 대표적인데, 각자 방식은 다르지만 ‘재료의 질감을 살리는 표현’이라는 공통점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 기법은 Pablo Picasso와 Georges Braque가 현대 미술에서 체계화한 표현 방식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이 그림들을 볼 때 단순히 “어떻게 그렸을까?”보다 “왜 이렇게 만졌을까?”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종이를 자르고 붙이는 손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이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그림’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림책 한 권으로 4주 수업이 가능한 이유

저는 한때 중등 독서논술 수업을 배운 적이 있었는데, 그때 교수님이 레오 리오니 그림책 한 권으로 4주짜리, 회당 1시간 30분 분량의 교육 계획안을 짜오라는 과제를 내주셨습니다. 그 당시 제 반응은 황당함이었습니다. 그림책 한 권인데 4주라니요. 억지로 끼워 맞추듯 계획안을 제출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림책을 제대로 공부하고 난 뒤에야 그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이 무리한 과제를 낸 게 아니라, 레오 리오니의 그림책이 실제로 그 정도 깊이를 가진 텍스트였던 겁니다.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림책의 독자 연령을 따로 분류하는 개념을 그림책 문해력(picture book literacy)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림책 문해력이란, 글과 그림이 함께 만들어내는 의미를 복합적으로 읽어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단순히 글을 읽는 능력이 아니라, 시각 이미지와 서사 구조를 동시에 해석하는 고차원적인 독해 역량입니다. 레오 리오니의 작품이 유독 이 능력을 키우는 데 좋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의 책에는 표면적인 이야기 아래에 철학적 질문들이 층층이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림책은 아이들만을 위한 장르가 아닙니다. 국제그림책학회(IBBY, International Board on Books for Young People)는 그림책을 "모든 연령대를 위한 문학 형식"으로 정의하며, 성인 독자를 위한 그림책 연구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출처: IBBY). 레오 리오니가 '현대 철학 우화의 거장'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그의 작품이 나이와 관계없이 독자의 삶에 철학적 질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프레드릭을 예로 들면, 겨울을 대비해 열심히 식량을 모으는 생쥐들 사이에서 혼자 햇살과 색깔과 말을 모으는 시인 생쥐 프레드릭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 하나로 "예술가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물질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공동체에서 다름은 어떻게 수용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끝없이 이어갈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이 책을 성인 독서모임에서 꺼낸 적이 있는데, 그날 토론이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겼던 기억이 납니다. 얇고 단순한 그림책이 어떤 두꺼운 소설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낸다는 걸 그날 처음 실감했습니다.

 

레오 리오니는 89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40여 편의 그림책을 남겼습니다. 49살에 시작해서 40년을 채운 셈입니다. 그 시간 동안 그가 탐구한 것은 결국 사람이 살면서 반드시 마주치게 되는 질문들이었습니다.

 

레오 리오니의 그림책을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Swimmy나 프레드릭을 먼저 펼쳐보시길 권합니다. 아이와 함께 읽어도 좋고, 혼자 조용히 읽어도 좋습니다. 그림을 먼저 훑어보고, 그다음에 글을 읽고, 그리고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보는 방식을 권합니다. 제 경험상 그 세 번의 반복 사이에서 처음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드러납니다. 얇은 책 한 권이 이렇게 많은 걸 품고 있다는 사실, 직접 겪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강렬했습니다.

 

레오 리오니의 그림책은 신기하게도 읽는 순간보다 읽고 난 뒤 더 오래 남습니다. 유치원 아이들과 Swimmy를 읽은 날이면 활동이 끝난 뒤에도 아이들이 작은 물고기 이야기를 자기 놀이 속으로 계속 가져오곤 했습니다. 어느 날은 딸이 프레드릭을 읽고 창밖 노을을 보며 '저건 프레드릭이 모아둔 색 같아'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작가의 그림책은 설명보다 감각으로 기억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JUNf00f1S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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