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백희나 작가를 처음 접했을 때 "이거 진짜 그림이 맞아?"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펼쳤을 때, 한 아이가 대뜸 "선생님, 이거 장난감 사진이에요?"라고 물었고, 그 순간 저도 페이지를 다시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그림책인데 그림이 아닌 것 같은 이 독특한 느낌, 그게 백희나 그림책의 첫인상이었습니다.
백희나 그림책, 독특한 연출 방식
아이들과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을 처음 펼쳤을 때, 평소와는 조금 다른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보통은 이야기를 따라가며 페이지를 넘기는데, 이 책을 볼 때는 아이들이 한 장면에서 쉽게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인형의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거나, 배경 구석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이건 진짜예요?”라고 묻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이 그림책이 단순히 ‘읽는 책’이 아니라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그의 작업 방식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백희나 작가는 일반적인 그림책처럼 그림을 그리는 대신, 직접 만든 입체 인형과 소품을 실제 공간에 배치한 뒤 촬영하는 방식으로 장면을 구성합니다. 그래서 화면 속 인물의 표정이나 옷의 질감, 빛의 방향까지 모두 현실의 물성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림’으로 보기보다 실제 존재하는 장면처럼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느낀 가장 큰 차이는 ‘머무르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그림책보다 한 페이지에 머무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고, 아이들이 스스로 세부를 발견하는 순간이 많아졌습니다. 단순히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장면 속을 탐색하는 경험으로 바뀌는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이 작업에는 사진 촬영 이후의 디지털 보정도 함께 사용됩니다. 실제로 촬영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일부 요소를 더하거나 조정하면서, 현실과 판타지가 자연스럽게 섞인 화면이 완성됩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책은 익숙한 일상 공간처럼 보이면서도 어딘가 낯설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동시에 만들어냅니다.
이처럼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은 표현 방식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 장치로 작동합니다. 저는 이 책들을 읽으며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어떻게 만들어졌는가”가 독자의 경험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를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책은 읽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멈춰 서서 바라보게 됩니다.
백희나 작가의 주요 작품과 특징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구름빵 (2004): 입체 인형과 실사 배경 기법의 시작점. 10여 개국 출간, 볼로냐 아동도서전 일러스트레이터 선정
- 달 샤베트 (2010년대): 지구 온난화를 은유적으로 풀어낸 작품. 2022년 보스턴 글로브 혼북 어워드 수상
- 장수탕 선녀님 (2013): 창원아동문학상·한국출판문학상 어린이 부문 동시 수상
- 알사탕 (2017): 2019년 일본판 출간, 제24회 일본 그림책 대상 번역 그림책 부문 독자상 수상
- 이상한 엄마 (2016): 워킹맘의 죄책감을 판타지로 위로하는 작품

딸과 함께 알사탕을 읽었을 때, 딸이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책 속 주인공이 알사탕을 먹으며 주변 사람들의 속마음을 듣게 된다는 설정이 아이 마음속에서 현실로 번진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이야기가 책 밖으로 흘러넘치는 경험, 그게 이 그림책의 진짜 매력인 것 같습니다.
백희나 작가의 수상
2020년, 백희나 작가는 아동문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중 하나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ALMA, Astrid Lindgren Memorial Award)을 수상했습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이란 스웨덴 문화부가 주관하고 스웨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제 아동청소년 문학상으로, 매년 전 세계에서 단 한 명 또는 단체에게 수여됩니다. 노벨문학상에 비견될 만큼 아동문학 분야에서의 위상이 높습니다(출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 공식 사이트).
그 해 심사위원들은 백희나 작가의 작품 세계를 두고 "경이로운 세계의 출입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단순히 잘 만든 그림책이라는 칭찬이 아니라, 독자를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이끄는 통로라는 의미였습니다. 제가 유치원 현장에서 느낀 것도 정확히 그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펼치는 순간,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수상 당시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라 시상식에 직접 참석하지 못했고, 이후 별도로 상을 받으러 스웨덴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스스로도 "실제 내가 받는 게 맞나" 싶을 만큼 놀라셨다고 하는데, 그 겸손함이 오히려 이분의 작품 태도와 딱 맞아 보였습니다.
국내에서도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이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실렸습니다. 교과서 수록이란 국가 교육과정 개발 기관의 심의를 거쳐 교육 목적에 적합하다고 판단된 작품만 포함되는 것으로, 그 자체로 작품의 교육적 가치가 공식 인정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출처: 교육부). 다만 교과서에 실린 것이 원작 그림책이 아니라 KBS 애니메이션 버전이었다는 점은 여전히 아쉬운 대목입니다. 구름빵 저작권 분쟁을 생각하면, 원작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공로가 다른 형태로 기록된 셈이니까요.
이상한 엄마를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아이보다 제가 더 울컥했습니다. 아이가 아파서 조퇴했는데 달려가지 못한 경험, 그 죄책감을 이토록 따뜻하게 감싸주는 책이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이분의 그림책이 엄마들 사이에서 유독 인기를 끄는 이유가 아마 여기 있을 겁니다.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은 결국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기도 합니다. 아이와 함께 읽다가 어느 순간 아이는 그림에 빠져 있고, 저는 글에 위로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림전도 꼭 가보시길 권합니다. 책에서 한 발짝 더 들어가, 그 인형들을 실제로 마주하는 경험은 분명 또 다른 감동일 것입니다.
처음 알사탕을 읽었을 때 가장 오래 남았던 건 화려한 이야기보다도,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마음을 조용히 꺼내 보여주는 방식이었습니다.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은 늘 아주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하는데, 어느 순간 현실과 상상이 자연스럽게 섞이며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립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인형과 장면의 재미에 빠져들고, 어른들은 그 안에 숨어 있는 외로움이나 다정함을 뒤늦게 발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을 때면 백희나 작가의 책에서는 유독 아이들의 표정을 오래 바라보게 됩니다. 웃고 떠들다가도 어느 장면에서는 갑자기 조용해지며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 침묵이 참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아마 백희나의 그림책은 이야기를 읽게 하는 책이라기보다, 사람의 마음을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라서 오래 사랑받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KTR3x7XJe8Q&list=PLWnyli_FOZS5rA-iFsTjyIEBNQCS7mjr2&index=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