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백희나 작가를 처음 접했을 때 "이거 진짜 그림이 맞아?"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펼쳤을 때, 한 아이가 대뜸 "선생님, 이거 장난감 사진이에요?"라고 물었고, 그 순간 저도 페이지를 다시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그림책인데 그림이 아닌 것 같은 이 독특한 느낌, 그게 백희나 그림책의 첫인상이었습니다.
인형과 실사 배경으로 만드는 독특한 연출 방식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이 다른 작품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이유는 표현 방식에 있습니다. 일반적인 그림책이 일러스트레이션(illustration), 즉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으로 구성되는 것과 달리, 백희나 작가는 직접 제작한 입체 인형을 실제 배경 앞에 배치하고 촬영한 사진을 기반으로 그림책을 만듭니다. 여기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stop-motion animation)적 기법이 연상되는데, 이는 실물 오브제를 카메라로 포착하여 장면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독자가 그림을 볼 때 평면이 아닌 입체적인 공간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제가 직접 아이들과 이 책들을 읽어보니, 그 반응이 확실히 달랐습니다. 아이들은 그림 속 인형의 표정을 가까이 들여다보거나, "저 배경은 진짜 장소예요?"라고 물으며 평소보다 훨씬 오래 한 페이지에 머물렀습니다. 그림을 "감상"하게 만드는 책, 이게 백희나 그림책이 가진 힘이라고 직접 겪어보니 실감했습니다.
또한 일부 장면에는 디지털 리터칭(retouching), 즉 촬영한 사진을 컴퓨터로 보정하거나 3D 모델링으로 구성 요소를 추가하는 작업도 병행합니다. 덕분에 현실적인 질감과 판타지적인 분위기가 동시에 살아있는 화면이 완성됩니다. 길에 엎드려 촬영하다가 지나가던 할머니에게 등 두드림을 받았다는 에피소드는, 이 작가가 얼마나 현장 중심으로 작업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백희나 작가의 주요 작품과 특징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구름빵 (2004): 입체 인형과 실사 배경 기법의 시작점. 10여 개국 출간, 볼로냐 아동도서전 일러스트레이터 선정
- 달 샤베트 (2010년대): 지구 온난화를 은유적으로 풀어낸 작품. 2022년 보스턴 글로브 혼북 어워드 수상
- 장수탕 선녀님 (2013): 창원아동문학상·한국출판문학상 어린이 부문 동시 수상
- 알사탕 (2017): 2019년 일본판 출간, 제24회 일본 그림책 대상 번역 그림책 부문 독자상 수상
- 이상한 엄마 (2016): 워킹맘의 죄책감을 판타지로 위로하는 작품

딸과 함께 알사탕을 읽었을 때, 딸이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책 속 주인공이 알사탕을 먹으며 주변 사람들의 속마음을 듣게 된다는 설정이 아이 마음속에서 현실로 번진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이야기가 책 밖으로 흘러넘치는 경험, 그게 이 그림책의 진짜 매력인 것 같습니다.
세계가 알아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의 의미
2020년, 백희나 작가는 아동문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중 하나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ALMA, Astrid Lindgren Memorial Award)을 수상했습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이란 스웨덴 문화부가 주관하고 스웨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제 아동청소년 문학상으로, 매년 전 세계에서 단 한 명 또는 단체에게 수여됩니다. 노벨문학상에 비견될 만큼 아동문학 분야에서의 위상이 높습니다(출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 공식 사이트).
그 해 심사위원들은 백희나 작가의 작품 세계를 두고 "경이로운 세계의 출입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단순히 잘 만든 그림책이라는 칭찬이 아니라, 독자를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이끄는 통로라는 의미였습니다. 제가 유치원 현장에서 느낀 것도 정확히 그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펼치는 순간,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수상 당시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라 시상식에 직접 참석하지 못했고, 이후 별도로 상을 받으러 스웨덴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스스로도 "실제 내가 받는 게 맞나" 싶을 만큼 놀라셨다고 하는데, 그 겸손함이 오히려 이분의 작품 태도와 딱 맞아 보였습니다.
국내에서도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이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실렸습니다. 교과서 수록이란 국가 교육과정 개발 기관의 심의를 거쳐 교육 목적에 적합하다고 판단된 작품만 포함되는 것으로, 그 자체로 작품의 교육적 가치가 공식 인정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출처: 교육부). 다만 교과서에 실린 것이 원작 그림책이 아니라 KBS 애니메이션 버전이었다는 점은 여전히 아쉬운 대목입니다. 구름빵 저작권 분쟁을 생각하면, 원작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공로가 다른 형태로 기록된 셈이니까요.
이상한 엄마를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아이보다 제가 더 울컥했습니다. 아이가 아파서 조퇴했는데 달려가지 못한 경험, 그 죄책감을 이토록 따뜻하게 감싸주는 책이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이분의 그림책이 엄마들 사이에서 유독 인기를 끄는 이유가 아마 여기 있을 겁니다.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은 결국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기도 합니다. 아이와 함께 읽다가 어느 순간 아이는 그림에 빠져 있고, 저는 글에 위로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림전도 꼭 가보시길 권합니다. 책에서 한 발짝 더 들어가, 그 인형들을 실제로 마주하는 경험은 분명 또 다른 감동일 것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KTR3x7XJe8Q&list=PLWnyli_FOZS5rA-iFsTjyIEBNQCS7mjr2&index=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