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진짜!"라는 말 한마디가 짜증일 수도, 억울함일 수도, 심지어 기쁨일 수도 있다는 사실,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림책 『아 진짜』는 이 세 음절 하나만으로 아이들의 하루 전체를 담아냅니다. 유아교사로 일하면서 이 책을 교실에서 처음 펼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거든요.

'아 진짜' 감정표현 놀이,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그림책 『아 진짜』는 권윤덕 작가가 글을 쓰고 이장미 작가가 그림을 그린 작품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등장인물이 어떤 상황에서도 "아 진짜" 딱 한마디만 한다는 점입니다. 아침에 억지로 끌려 일어나는 장면, 형이 빵을 다 가져가는 장면, 밖에서 넘어지는 장면 등 상황은 계속 바뀌는데 대사는 단 하나입니다.
제가 교실에서 이 책을 활용할 때 가장 먼저 한 것은 면지(endpaper)부터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면지란 책의 표지 안쪽에 붙어 있는 첫 번째 페이지로, 본문이 시작되기 전 분위기를 암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책의 면지에는 줄무늬 옷을 입은 주인공이 울고, 화내고, 기뻐하는 다양한 표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 아이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라고 물으면, 본문을 열기도 전에 이미 감정을 읽기 시작합니다.
이 접근 방식은 정서지능(EQ) 발달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정서지능이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유아기에 이 능력을 키우는 것이 이후 사회적 관계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유아의 정서 발달과 또래 관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연구들에 따르면,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높은 아이일수록 또래와의 갈등 해결 능력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한국아동학회).
제가 직접 써봤는데, 소리 내기 활동이 특히 효과적이었습니다. 같은 "아 진짜!"라는 말을 억울할 때, 기쁠 때, 화날 때 각각 다르게 소리 내보게 하면 아이들은 금세 표정과 목소리가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쑥스러워하던 아이들도 친구들이 과장되게 표현하는 걸 보면서 하나둘씩 따라 하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교실 전체가 각자의 "아 진짜"로 가득 찹니다. 이때 교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그 소리들을 감정 이름으로 연결해 주는 것입니다.
공감 활동을 구성할 때는 아래 순서가 효과적이었습니다.
- 면지를 먼저 보여주며 상황과 표정 읽기
- 본문 장면마다 "아 진짜"를 각자의 방식으로 소리 내기
- 가장 공감되는 장면에 스티커(공감 하트) 붙이기
- 어떤 장면에 가장 많은 하트가 모였는지 함께 확인하기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감정 공감(empathy), 즉 다른 사람의 감정 상태를 자신의 것처럼 느끼고 이해하는 능력을 연습하게 됩니다.
감정어휘, 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가
집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8살 딸아이가 "아 진짜!"라고 외쳤을 때 저는 "지금 어떤 마음이야?"라고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짜증나"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눠보니 "속상했어", "억울했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이 변화가 놀라웠습니다. 같은 감정인데, 표현하는 단어가 달라지자 아이 스스로도 자신의 감정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 같았거든요.
이것이 바로 감정어휘(emotional vocabulary)의 힘입니다. 감정어휘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의 집합을 말합니다. "짜증 나"와 "억울해"는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감정 상태를 가리킵니다. 아이가 이 차이를 언어로 구별할 수 있다면, 감정을 행동이 아닌 말로 표현하는 능력도 함께 자랍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영유아 발달 지원 자료에 따르면, 유아기(만 3~6세)에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경험이 풍부할수록 초등학교 이후 공격적 행동이 줄고 자기조절 능력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제 경험상 이건 수치로만 보는 것보다 교실에서 직접 확인했을 때 훨씬 실감이 납니다. "아 진짜 왜 이래!"라고 소리치던 아이가 "저 지금 속상한 거 있어요"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그 작은 변화가 교사로서는 정말 크게 느껴지거든요.
『아 진짜』 그림책이 감정어휘 교육 도구로 특히 유용한 이유는 정서적 맥락(emotional context) 안에서 어휘를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서적 맥락이란 단순히 단어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 감정이 느껴지는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언어와 감정을 연결하는 환경을 말합니다. 아이들이 주인공의 상황에 공감하면서 "이건 억울한 거야", "이건 기분 좋은 거야"라고 말할 때, 그 단어는 단순한 어휘가 아니라 살아 있는 감정 언어가 됩니다.
활동 마무리로 활동지를 활용하는 방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순한 A4 학습지 대신 노란색 틀 안에 라벨지로 출력한 활동지를 사용하는 것인데, 형식 하나만 바꿨을 뿐인데 아이들이 "이거 숙제야?"라고 묻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교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종이의 색깔이나 형태만으로도 아이들의 참여도와 집중도가 달라지거든요.
그림책 한 권으로 감정을 느끼고, 소리 내고, 공감하고, 표현하는 과정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 교사로서도, 부모로서도 이 책을 펼칠 때마다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아 진짜!"라는 말 뒤에 어떤 마음이 있는지 스스로 말할 수 있게 되는 것, 그게 이 책이 주는 진짜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교실에서든 집에서든, 이 그림책 한 권으로 오늘 저녁 아이와 감정 이야기를 나눠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