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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 그림책 (작가, 세 가지 놀이, 깊이 대화하는 법)

by seulki87 2026. 4. 13.

『돼지책』 한 권이 국내에서만 75만 부 이상 팔렸습니다. 처음 그 수치를 접했을 때 저도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그림책 한 권이 이 정도 판매고를 올렸다면, 단순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어른들 마음까지 건드린 게 분명합니다. 아이와 함께 앤서니 브라운의 책을 펼쳤다가, 어느새 제가 더 빠져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앤서니 브라운 그림책, 작가를 알면 그림이 달라 보입니다

Anthony Browne의 그림책을 처음 아이들과 함께 읽었을 때, 저는 한 가지가 계속 눈에 들어왔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그렸을까?” 배경 속 사물 하나, 벽에 걸린 그림 하나까지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큼 정교했습니다. 아이들과 책을 보다가도 “여기 또 이상한 게 있어요!”라는 말이 자주 나왔고, 한 장면을 한참 들여다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이력을 알고 나서 보니 완전히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병원에서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신체 구조나 수술 과정을 정확하게 표현해야 하는 작업을 했던 만큼, 사물을 관찰하고 재현하는 능력이 매우 훈련된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 배경을 알고 나니, 그림 속 디테일 하나하나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의도된 관찰의 결과’처럼 느껴졌습니다.

 

이후 그는 그래픽 디자이너와 카드 디자이너로 일하며 다양한 표현 방식을 실험했고, 그 과정이 지금의 독특한 그림책 스타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책은 단순히 정교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현실과 상상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특징을 보입니다. 아이들과 읽다 보면 “이건 진짜인데, 이건 왜 이렇게 그려졌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는데, 그 지점에서 이야기가 더 깊어집니다.

저는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그의 책을 읽으며 한 가지를 확실히 느꼈습니다. 이 작가의 그림은 ‘빨리 넘길 수 없는 그림’이라는 점입니다.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계속 멈춰서 확인하게 만들고, 숨겨진 요소를 찾게 만듭니다. 아이들이 책을 읽는 속도 자체가 달라지는 경험이었습니다.

 

Anthony Browne은 이러한 작품 세계로 Hans Christian Andersen Award를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 상은 International Board on Books for Young People에서 수여하는, 어린이 문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평가됩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그의 그림책을 볼 때 “무엇이 그려져 있는가”보다 “왜 이렇게까지 그려졌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작가를 알고 나니, 그림이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하나의 ‘의도된 세계’로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림책에 숨겨진 세 가지 놀이

앤서니 브라운 그림책을 처음 접한 분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림이 왜 이렇게 복잡하지?"입니다. 저도 딸과 함께 『숲 속으로』를 처음 읽을 때 똑같은 반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단순히 복잡한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설계된 구조라는 걸 알고 나서, 책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의 그림책에는 크게 세 가지 놀이적 요소가 있습니다.

  • 숨은 그림 찾기: 배경과 사물 속에 다른 이야기나 캐릭터를 숨겨두는 방식입니다. 『숲 속으로』에서는 헨젤과 그레텔, 라푼젤, 백설공주 등 여러 옛이야기 속 요소들이 그림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 모양 상상하기(변형):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변형' 기법에서 직접 영향을 받은 방식입니다. 『돼지책』에서 엄마가 집을 나간 뒤 벽지, 전등, 식탁 등 집 안 모든 사물이 서서히 돼지 모양으로 바뀌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 다른 그림 찾기: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한 미술관』처럼 명화를 패러디하여 독자가 원작을 떠올리며 비교하는 즐거움을 주는 방식입니다.

제가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숲 속으로』를 읽을 때, 한 아이가 "여기 빨간 망토 있어요!" 하고 소리를 지르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책을 두 번, 세 번 다시 펼쳐보며 새로운 걸 찾아내는 눈빛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 숨은 그림 찾기 요소는 아이들이 책을 반복해서 읽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장치입니다.

 

초현실주의(surrealism) 기법이 어떤 건지 모르면 그림책이 그냥 이상해 보일 수 있습니다. 초현실주의란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장면을 마치 실제처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예술 사조입니다. 앤서니 브라운이 르네 마그리트의 영향을 받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사실적인 묘사력 위에 비현실적인 상상력을 얹어야 그 긴장감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손님』에서 불안한 감정을 초현실적인 장면으로 표현한 방식이 그 좋은 예입니다.

그림책으로 아이와 더 깊이 대화하는 법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그림이 예쁜 책 정도로 생각했는데, 작가의 삶과 그림책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고 나서부터 읽는 깊이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앤서니 브라운은 자신의 가족과 주변 인물을 그림책 속에 직접 재현하는 방식으로 작업합니다. 작품 대부분의 모티브가 작가 본인의 성장 과정과 가족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실제로 영국 도서관 협회(CILIP)의 자료에 따르면 앤서니 브라운은 그림책을 통해 가족 관계, 정체성, 감정 표현 등 아이들이 직면하는 실제 문제를 일관되게 다루어 왔으며, 이런 이유로 영국과 한국 양쪽의 중학교 교과서에도 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출처: CILIP).

 

그래서 저는 아이와 책을 읽을 때 이렇게 접근하면 효과적이라고 느꼈습니다.

  1. 먼저 그림을 충분히 살펴보는 시간을 줍니다. 글을 읽기 전에 그림만 보며 "여기에 뭐가 있을까?" 하고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집중도가 달라집니다.
  2. 변형된 사물을 함께 찾습니다. 『돼지책』이라면 몇 페이지부터 돼지 모양이 나타나는지 탐정처럼 찾아보는 식입니다.
  3. "왜 이렇게 그렸을까?"를 같이 생각해 봅니다. 정답이 없는 질문이기 때문에 아이도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습니다.

딸과 함께 이 방식으로 읽었을 때, 딸이 스스로 "엄마가 없으니까 집이 돼지우리가 됐나 봐요"라고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설명한 게 아니라 그림을 보고 스스로 의미를 끌어낸 것입니다. 그때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이 단순한 이야기책이 아니라는 걸 몸으로 느꼈습니다.

 

그림책을 고를 때 "아이가 좋아하나"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앤서니 브라운의 책은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그 그림이 어디서 왔는지를 조금만 알아도 함께 읽는 시간이 훨씬 풍성해집니다. 아직 그의 책을 펼쳐보지 않으셨다면, 『돼지책』 한 권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읽다 보면 분명 아이보다 어른이 먼저 "이게 뭐지?" 하고 그림을 들여다보게 될 겁니다.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어오며 수많은 작가를 만났지만, 앤서니 브라운은 제게 늘 가장 특별한 그림책 작가 중 한 사람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의 책은 한번 읽고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볼 때마다 숨겨진 상징과 감정이 새롭게 발견되는 책이라고 느껴집니다. 딸과 함께 책을 읽다가 그림 속 작은 고릴라나 액자, 표정 하나를 발견하며 한참 이야기를 나눈 적이 많은데, 그 시간들은 단순한 독서를 넘어 서로의 생각을 깊이 들여다보는 대화의 시간이 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이 아이의 상상력뿐 아니라 어른의 감수성까지 함께 깨워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OMORzBBx1q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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