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상 그림책과 그렇지 않은 그림책, 유아 반응이 눈에 띄게 다릅니다. 저도 처음에는 단순히 "아이들이 좋아하면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직접 경험해 보니 문학성과 예술성이 갖춰진 책에서 아이들의 반응이 훨씬 깊고 오래 지속된다는 걸 느꼈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그림책을 고르면 좋을지, 제가 현장에서 체감한 것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유아 그림책 선택법, 좋은 그림책-아이 반응이 달라지는 이유
그림책을 고를 때 많은 부모가 "유명한 책인가?", "글밥이 적당한가?"를 먼저 봅니다. 그런데 실제로 아이들의 반응을 오래 관찰해 보면, 아이를 오래 붙잡는 그림책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단순히 예쁜 그림이나 유명세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 구조와 그림 표현 방식 자체가 아이의 사고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림책의 문학성을 판단할 때 흔히 언급되는 기준 중 하나가 플롯(plot)입니다. 플롯이란 이야기의 사건들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고 전개되는가를 의미하는데, 일반적으로 단선적·누적적·연쇄적·순환적 구조로 나뉩니다. 단선적 구조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이고, 누적적 구조는 반복이 점점 쌓이며 긴장감이 커지는 방식입니다. 순환적 구조는 마지막 장면이 다시 처음과 연결되며 이야기 전체가 원처럼 이어지는 형태를 말합니다.
제가 유치원 현장에서 느낀 건, 아이들이 반드시 복잡한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반복과 예측, 그리고 작은 변주가 있는 누적적·순환적 구조에 훨씬 강하게 반응했습니다. 같은 문장이 반복되다가 아주 조금 달라지는 순간 아이들은 먼저 변화를 눈치채고 "이번엔 다르다!" 하고 반응합니다. 이야기를 단순히 듣는 게 아니라 패턴을 발견하며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등장인물의 감정 표현 방식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문학에서는 인물의 성격과 감정을 설명하는 방식을 직접법과 간접법으로 나누는데, 직접법은 "슬펐어요", "화가 났어요"처럼 감정을 바로 설명하는 방식이고, 간접법은 표정·행동·상황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추론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그림책에서는 이 간접법이 특히 강하게 작동합니다.
제 경험상 아이들은 감정을 설명해 주는 책 보다, 그림 속 표정과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마음을 읽어내야 하는 책에 더 오래 머물렀습니다. "왜 울고 있을까?"라는 질문에 단순히 "슬퍼서요"라고 끝나는 게 아니라, "엄마가 늦게 와서 속상한 것 같아요", "혼자 있어서 무서운 것 같아요"처럼 자신의 경험까지 연결해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그림책이 단순한 읽기 자료를 넘어 감정 추론(emotional inference)의 도구가 되는 순간입니다. 감정 추론이란 상대의 표정이나 상황을 단서로 마음 상태를 유추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림 역시 중요한 기준입니다. 좋은 그림책의 그림은 단순히 글 내용을 설명하는 역할에 머물지 않습니다. 글에 없는 정보를 그림이 따로 이야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글과 그림이 서로 다른 감정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아동문학 연구에서는 글(text)과 그림(image)이 상호보완적으로 의미를 만드는 그림책일수록 유아의 시각적 문해력(visual literacy)을 자극한다고 설명합니다. 시각적 문해력이란 그림과 이미지 속 정보를 해석하고 의미를 구성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제가 딸과 그림책을 읽다가 가장 놀랐던 순간도 바로 이런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글만 따라 읽고 있었는데, 아이는 배경 구석에 작게 그려진 고양이 표정을 발견하고 한참 웃고 있더군요. 어른 눈에는 지나가는 장면이지만, 아이는 이미 그림 속 또 다른 이야기를 읽고 있었던 겁니다.
그림 한 장이 말하는 것들, 예술적 표현양식 읽기
그림책의 그림에는 단순히 이야기를 설명하는 기능 이상의 것이 담겨 있습니다. 예술적 표현양식이란 작가가 그림을 어떤 미학적 방향으로 구성했는가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재현주의·표현주의·사실주의·고전주의·민속그림·만화 등으로 분류됩니다. 재현주의는 대상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옮기는 방식이고, 표현주의는 작가의 감정과 내면을 색과 형태에 담아내는 방식입니다.
국내 아동문학상 수상작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수상 그림책들은 재현주의와 표현주의뿐 아니라 회화에서 주로 쓰이던 고전주의와 사실주의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중앙대학교 학술정보원).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유아 대상 그림책이라고 하면 단순하고 귀엽게 그린 만화풍이 전부일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훨씬 넓은 스펙트럼이 존재했습니다.
예술적 매개체(artistic media)도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매개체란 작가가 그림을 표현하는 데 사용하는 재료와 기법을 통칭하는 말로, 그림물감·콜라주·판화·지점토·컴퓨터 그래픽 등이 포함됩니다. 특히 한국화가 도입된 그림책에서 느껴지는 한지의 결과 파스텔 톤의 색감은 서양화 재료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특유의 따뜻함을 줍니다. 제가 직접 아이들과 한국화 기법으로 그려진 그림책을 펼쳤을 때, 아이들이 "이건 왜 번진 것 같아요?"라고 물어보면서 그림 자체에 호기심을 갖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질문 하나가 짧은 미술 감상 시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그림책을 고를 때 예술적 표현양식 측면에서 확인하면 좋은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그림이 이야기의 내용을 단순히 반복하는가, 아니면 글에 없는 정보나 감정을 추가로 전달하는가
- 색의 상징성이 있는가 (예: 특정 장면에서 색이 달라지는 이유가 있는가)
- 여백 처리 방식이 독특한가 (흰 여백, 단순 색, 배경 그림 등)
- 등장인물의 모양이 자연 그대로인지, 과장되거나 상징적으로 표현되었는지
장르 편중 문제, 현장에서 느낀 한계
수상작 분석에서 드러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장르의 편중입니다. 환상동화(fantasy picture book)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환상동화란 현실에서 불가능한 사건이나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로 의인화된 동물, 초현실적 배경 등을 포함합니다. 문제는 수상작들조차 "환상=의인화된 동물"이라는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정보전달 책입니다. 정보전달 책이란 개념, 과학, 자연, 인간 발달 등 특정 지식과 정보를 유아에게 전달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그림책을 의미합니다. 정보화 시대에 맞춰 그림책을 지식 전달 도구로 활용하려는 경향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지식 전달에 치우친 그림책은 아이들이 한 번 읽고 나면 다시 꺼내 보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 이야기의 결이 살아 있고 열린 결말을 가진 그림책은 아이들이 스스로 꺼내서 혼자 들여다보는 빈도가 높았습니다.
국내 유아교육 현장에서 그림책 활용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어린이집 총연합회의 보육 관련 자료에서도 그림책을 통한 언어 발달과 정서 발달의 연계성이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교육적 목적, 즉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 그림책을 고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문학성과 예술성이 갖춰진 그림책을 함께 읽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자기 생각을 말하는 빈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좋은 그림책을 고르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수상작 목록을 참고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단, 수상 여부만 보지 말고 플롯의 구조, 표현양식, 매개체까지 직접 한 장씩 넘겨보면서 확인하는 것을 권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와 함께 그림을 먼저 오래 들여다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라는 질문 하나가 아이의 심미적 경험을 열어주는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교사나 부모가 정답을 먼저 말하지 않을 때, 아이들이 가장 풍부한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는 것을 제가 현장에서 직접 확인했습니다.
참고: https://dcollection.cau.ac.kr/public_resource/pdf/000000003902_20260521132126.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