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처음에 탄력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냥 성격 강한 아이"를 뜻하는 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아이들을 보면 볼수록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느꼈습니다. 탄력성은 강한 것이 아니라, 넘어진 뒤에 다시 일어서는 힘이었고, 그 힘은 그림책 한 권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유아 탄력성 키우기, 그림책 활용- 아이가 실패와 감정을 만나는 방식
제가 직접 현장에서 경험해 보니, 유아들이 어려움 앞에서 무너지는 순간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옵니다. 블록을 쌓다가 무너지면 그냥 주저앉아 버리는 아이, "나는 못해"를 입버릇처럼 말하는 아이. 그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막막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때 그림책이 꽤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책 속 주인공이 여러 번 실패한 끝에 다시 도전하는 장면을 아이들과 함께 읽었는데, 한 아이가 조용히 손을 들더니 "저도 블록 무너졌는데 다시 만들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유도한 것도 아니었는데, 스스로 자기 경험을 꺼낸 것입니다. 그 순간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서사적 공감(narrative empathy)의 힘입니다. 서사적 공감이란 이야기 속 인물의 감정과 상황에 자신을 투영하며 감정적 연결을 경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유아들은 주인공의 실패와 회복 과정을 보면서, 그것이 마치 자신의 일처럼 느끼는 간접 경험을 하게 됩니다. 직접 겪기 전에 이미 "어려움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는 셈입니다.
그림책 활동에서 교사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교훈만 전달하려는 접근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왜 주인공이 속상했을까?", "너도 그런 느낌이 든 적 있어?"처럼 개방형 질문을 던졌을 때 아이들의 반응이 훨씬 풍부해졌습니다. 반대로 "주인공은 용감했지?"처럼 답이 정해진 질문을 하면 아이들은 그냥 "네"하고 넘어갑니다.
사회정서학습(SEL, Social Emotional Learning)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SEL이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며, 타인과 공감하고 긍정적인 관계를 맺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 접근법입니다. 그림책 기반 활동은 이 SEL의 핵심 목표를 자연스럽게 담아냅니다. 미국의 CASEL(Collaborative for Academic, Social, and Emotional Learning)에서는 SEL이 아동의 학업 성취뿐 아니라 정서 조절 능력과 사회적 적응력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출처: CASEL).
그림책 활동이 탄력성 증진에 효과적인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등장인물의 실패와 회복 과정을 통해 "다시 도전해도 괜찮다"는 인식을 형성
- 이야기 나누기와 역할놀이로 활동을 확장하면 감정 언어 표현력이 높아짐
- 교사의 개방형 질문이 더해지면 유아가 자신의 경험을 자발적으로 꺼내는 기회가 생김
- 혼자 읽는 것이 아니라 집단 독서와 토론으로 이어질 때 또래 간 공감 능력도 함께 자람
정서 발달과 회복력, 결과보다 과정을 먼저 봐야 하는 이유
탄력성(resilience)이라는 개념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탄력성이란 스트레스나 역경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긍정적으로 적응하며 회복하는 심리적 능력을 말합니다. 흔히 탄력성이 강한 아이를 "실패해도 금방 털고 일어나는 아이"로 그리지만, 실제로는 그 과정 자체가 탄력성을 키우는 훈련이 됩니다.
제가 직접 관찰해 보니, 교사가 결과만 칭찬할 때와 과정을 인정해 줄 때 아이들의 반응이 확연히 달랐습니다. "잘했어"라는 말보다 "다시 해 봤구나, 그게 멋진 거야"라는 한 마디가 아이를 훨씬 오래 의자에 앉아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건 제가 직접 겪어보지 않았으면 믿지 않았을 이야기입니다.
정서 조절(emotional regulation)도 탄력성의 핵심 요소입니다. 정서 조절이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인식하고, 상황에 맞게 표현하거나 조절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유아기에 이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면, 이후 사회적 갈등 상황에서도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그림책 활동 이후 역할놀이로 확장했을 때,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괜찮아, 다시 하면 돼"라고 친구를 위로하는 말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교사가 가르쳐 준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책 속 인물이 서로를 격려하던 장면이 그대로 놀이 속으로 옮겨온 것이었습니다. 이 경험이 저에게는 그림책이 단순한 읽기 자료가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해 준 순간이었습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유아기의 사회·정서적 발달은 이후 초등학교 적응과 또래 관계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이는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감정을 다루는 경험이 훨씬 더 중요한 기초가 된다는 점을 뒷받침합니다.
탄력성을 키우기 위해 그림책 활동을 진행할 때 현장에서 효과적이었던 접근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어려움을 극복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그림책을 선정한다
- 독서 후 "나도 이런 적 있었어?" 형태의 개방형 질문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 역할놀이나 그림 그리기로 활동을 확장해 감정 언어 표현을 자연스럽게 연습시킨다
- 결과보다 과정("다시 해 봤구나")을 칭찬하는 피드백을 꾸준히 이어간다
탄력성은 특별한 아이만 가지고 태어나는 자질이 아닙니다. 작은 실패를 반복하고, 그 안에서 "그래도 해 봤다"는 경험이 쌓일 때 조금씩 길러지는 힘입니다. 그림책은 그 경험을 안전하게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어 줍니다. 지금 아이가 쉽게 포기하거나 "못해"를 자주 말한다면, 억지로 독려하기 전에 그림책 한 권을 먼저 꺼내 보시길 권합니다. 교사나 부모가 옆에서 "그 주인공도 그랬는데"라고 한 마디 보태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마음에 무언가가 달라지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참고: https://dcollection.cau.ac.kr/public_resource/pdf/000000032631_20260529103405.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