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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굴' 그림책 놀이 (표지 읽기, 굴, 실전 활동)

by seulki87 2026. 4. 29.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한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과 함께 현장에서 그림책을 펼쳐보면, 이야기를 들려주는 순간보다 그 이후에 아이들이 폭발하는 상상력이 훨씬 더 강렬하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상한 굴'은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건드리는 그림책입니다. 굴이라는 공간 하나로 아이들의 사고가 어디까지 확장되는지, 직접 경험해 보니 생각보다 훨씬 깊은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히데오 키소, 출판사 한국프뢰벨(베틀북), 출판일 2000년 10월 31일

 

이상한 굴 그림책 놀이, 표지 읽기가 왜 그냥 넘기면 안 되는 이유

 

그림책 수업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기술 중 하나가 바로 표지 읽기(cover reading)입니다. 표지 읽기란 본문을 펼치기 전, 표지의 그림과 제목을 활용해 아이들이 내용을 예측하고 상상하도록 유도하는 접근법입니다. 단순히 "이 책 제목이 뭐예요?"가 아니라, 아이들이 그림만 보고 이야기 전체를 상상하게 만드는 과정이죠.

 

'이상한 굴' 표지에는 갈림길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아기 돼지와 그 위로 날아가는 새가 그려져 있습니다. 제가 직접 아이들과 이 장면을 살펴봤을 때, 어떤 아이는 "저건 터널이에요!", 또 다른 아이는 "산속에 구멍이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같은 그림을 보면서도 해석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게 바로 표지 읽기의 힘입니다.

 

한 가지 놓치기 쉬운 포인트가 있는데, 바로 가리기 색상 선택입니다. 제목 일부를 가릴 때 무심코 흰색 종이나 노란 포스트잇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하면 색상 자체가 아이들에게 불필요한 힌트나 감정을 던져줍니다. 표지와 유사한 색 계열로 가려야 아이들이 색의 메시지에 흔들리지 않고 순수하게 그림과 제목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 작은 차이가 실제 수업 분위기를 꽤 다르게 만든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됐습니다.

 

표지 읽기를 제대로 진행할 때 확인해야 할 핵심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가리개 색상은 반드시 표지와 유사한 계열로 선택할 것
  • 제목 전체가 아닌 핵심 단어 일부만 가려 궁금증을 유지할 것
  • 아이들의 예측 발언을 충분히 들은 뒤 제목을 확인하는 순서를 지킬 것
  • 면지(end paper)까지 놓치지 않고 함께 살펴볼 것

면지란 책의 표지와 본문 사이에 있는 빈 듯 보이는 페이지를 말합니다. '이상한 굴'의 면지에는 하얀 실선으로 아기 돼지가 걸어가는 방향이 새겨져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유아의 관찰력과 집중력을 자극하는 장치가 이런 곳에도 숨어 있다는 사실이 그림책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굴을 통과할 때마다 달라지는 존재: 상상력과 메타인지의 접점

 

'이상한 굴'의 핵심 서사 구조는 반복과 변주입니다. 아기 돼지가 구멍을 통과할 때마다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하고, 그 변화가 여러 장에 걸쳐 반복됩니다. 마녀가 되었다가, 돌멩이가 되었다가, 나무토막이 되었다가. 이 반복 구조는 유아교육에서 말하는 서사적 예측 능력(narrative prediction)을 자극합니다. 서사적 예측 능력이란 이야기의 흐름을 읽고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추론하는 인지 능력으로, 읽기 능력의 핵심 기반이 됩니다.

 

제가 직접 아이들과 이 장면들을 넘기면서 느낀 건, 아이들이 3~4번의 반복을 경험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패턴을 읽어내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또 변하겠다!"라고 스스로 먼저 예측하고, 실제 장면이 나왔을 때 맞으면 엄청난 성취감을 느낍니다. 이게 단순한 놀이처럼 보여도 사실 꽤 정교한 인지 활동입니다.

 

유아의 언어 발달과 이야기 이해력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양한 연구가 축적되어 있습니다. 그림책을 활용한 반복적 이야기 경험이 유아의 언어 표현력과 어휘 습득에 유의미한 효과를 준다는 점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어린이문학교육학회). 반복 구조의 그림책이 단순히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유아의 언어 발달을 지원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뒤표지에서 아기 돼지는 간신히 굴을 빠져나왔다 싶었는데 또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고, 이번엔 머리에 꽃 혹이 납니다. 말주머니는 비어 있습니다. "뭐라고 했을까?"라는 질문 하나가 아이들의 상상을 또 한 번 폭발시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는데 뒤표지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구성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훌라후프와 종이 한 장으로 만드는 실전 활동

 

그림책을 읽은 뒤 어떤 활동으로 연결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경험하는 깊이가 달라집니다. '이상한 굴'은 신체 활동과 조형 활동 모두로 자연스럽게 확장됩니다.

신체 활동으로는 훌라후프를 굴로 활용하는 방식이 효과적입니다. 아이들이 훌라후프를 통과하면서 선생님이 지정한 캐릭터로 변신하고, 그 캐릭터의 움직임을 몸으로 표현합니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정답을 맞히는 게 아니라 몸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데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 활동은 조용한 아이들을 끌어내는 데도 효과적이었습니다. 몸을 움직이는 표현이 말보다 쉽기 때문입니다.

 

비닐 터널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농기구 판매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긴 비닐 터널에 아이들이 직접 스티커나 시트지로 꾸미고, 그 안을 통과하는 방식입니다. 비닐 소재이기 때문에 바깥에서도 안이 보이고, 통과하는 아이도 밖을 볼 수 있어 두려움 없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유아기 아이들에게 밀폐된 공간에 대한 불안감을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교육적으로 잘 설계된 방식이라고 느꼈습니다.

 

종이 접기를 활용한 굴 만들기 활동도 별도 준비가 거의 필요 없어 실용적입니다. A4 색지를 반복해서 접은 뒤 가위질 선을 넣고 고리를 잘라내면, 아이 몸이 통과할 수 있는 긴 굴이 펼쳐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생각하는 이상한 굴"을 먼저 그림으로 그려두고, 책을 읽은 뒤 자신이 그린 굴과 비교해 보는 순서입니다. 사전 활동(pre-activity)이란 본 활동 전에 아이들의 기존 지식이나 상상을 끌어내는 준비 과정으로, 학습 몰입도와 이해 깊이를 높이는 데 효과적입니다(출처: 한국유아교육학회).

 

이러한 신체·조형 연계 활동이 유아의 창의적 표현력 발달에 미치는 효과는 유아교육 분야에서 꾸준히 주목받아 왔습니다. 놀이 기반 학습(play-based learning)이란 교사 주도의 지식 전달이 아닌, 아이 스스로의 탐색과 경험을 통해 개념을 형성하는 접근법으로, 창의성과 자기 표현력을 동시에 키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상한 굴' 활동이 이 방향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그림책 수업이 아닌 통합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충분히 운영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림책 한 권이 표지 읽기부터 시작해 신체 놀이, 조형 활동, 이야기 확장까지 이어지는 걸 직접 경험하고 나면, "책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완전히 바뀝니다. 물론 모든 수업을 이렇게 풍성하게 꾸리기가 쉬운 건 아닙니다. 준비 부담을 줄이면서도 아이들의 반응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활동을 고민하는 게 결국 현장 교사의 숙제입니다. 다음번 그림책 수업을 준비하실 때, 표지 한 장부터 다시 꼼꼼히 들여다보시는 것에서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YByI7JdWLYw&list=PLYL5HwiWwpBJx8DUDqZ_fbmYC_bHdqH1_&index=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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