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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색 다 바나나' 그림책 놀이 (색 탐색, 색 표현 놀이)

by seulki87 2026. 4. 23.

 

솔직히 저는 색깔 그림책이 그냥 "빨강, 파랑, 노랑"을 익히는 용도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색 다 바나나』를 접하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바나나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색이 담겨 있다는 걸, 아이들이 저보다 먼저 알아채더라고요.

 

이 색 다 바나나 그림책 놀이, 색 탐색: "이건 노란색이야"라는 말이 얼마나 좁은 말이었는지

 

일반적으로 색 인지 활동이라고 하면 색상환(color wheel)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색상환이란 빨강·노랑·파랑 같은 기본 색을 원형으로 배치해 색의 관계를 한눈에 보여주는 도구를 말합니다. 학교나 유치원에서도 색상환을 기준으로 "이건 원색, 저건 혼합색"처럼 분류하는 방식을 자주 씁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아이들과 이 그림책을 펼쳐 봤을 때, 색상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림책 속 바나나 페이지를 보여주자 한 아이가 "선생님, 이건 아직 덜 익은 바나나 색이에요"라고 했습니다. 색의 이름을 말한 게 아니라, 색에서 경험을 끌어낸 겁니다. 그 순간 저도 이마를 탁 쳤습니다.

 

책에서는 바나나를 단일한 노란색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옅은 크림빛, 맑은 황색, 짙은 올리브톤까지 한 페이지 안에 공존합니다. 이처럼 단일 사물 안에 다양한 색조(hue)가 존재함을 보여주는 방식은 색 지각(color perception) 능력을 자연스럽게 자극합니다. 색 지각이란 눈으로 들어오는 빛의 파장을 뇌가 구분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말하며, 이 능력은 어릴수록 풍부한 시각 자극을 통해 발달합니다(출처: 한국유아교육학회).

 

실제로 저는 아이들과 그림책을 보고 난 뒤 교실 안 탐색 활동으로 연결해 봤습니다. "우리 교실에서 초록색을 찾아볼까요?"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블록의 초록, 창문 밖 나뭇잎의 초록, 친구 가방의 초록이 전부 "다른 초록"이라는 걸 스스로 발견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색 분류 활동은 같은 색끼리 모으는 것에 집중하는데, 제 경험상 이 책을 먼저 읽고 나면 아이들이 오히려 차이에 주목하는 눈이 생깁니다.

색 탐색 활동을 진행할 때 제가 유용하게 활용한 방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그림책 속 색을 출력한 색지를 미리 준비해 두고, 아이들이 책 속 색과 실물 색을 비교하게 합니다.
  • "이 색을 보면 뭐가 떠올라요?"라는 열린 질문으로 시작해 연상(association) 활동으로 이어갑니다.
  • 한 가지 사물을 그리되, 단색이 아닌 2~3가지 색조를 섞어 표현하게 유도합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보이는 집중도가 단순 색칠 활동과 확실히 달랐습니다. "맞다, 틀리다"가 없는 질문이기 때문에 조용하던 아이도 자기 생각을 꺼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만의 색 표현 놀이: "너에게도 색깔이 있어"가 왜 마지막 페이지인지

 

그림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네모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그 구멍에 손을 대면 내 손의 색이 보이는 구조입니다. 처음엔 단순한 장치처럼 보였는데, 제가 직접 아이들 반응을 보고 나서야 이 페이지가 왜 마지막에 놓였는지 이해했습니다. 바나나도, 풀도, 하늘도 다 "색다르다"는 이야기를 쭉 한 다음, 마지막에 "너도 그래"라고 말하는 구조입니다.

 

이 책이 활용하는 방식은 그림책 치료(bibliotherapy) 개념과도 연결됩니다. 그림책 치료란 그림책을 매개로 독자가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을 투영하고 표현하도록 돕는 접근법으로, 유아 상담 및 정서 교육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독서치료학회). 색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는 활동은 이 접근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나를 색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색일까요?"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예상과는 꽤 달랐습니다. 평소 발랄한 아이가 조용한 파란색을 골랐고, 말수가 적은 아이가 빨간색을 들고 "용감해지고 싶어서요"라고 했습니다. 이런 반응은 색의 상징성(color symbolism), 즉 색이 문화적·심리적으로 특정 의미나 감정을 연상시키는 특성이 아이들에게도 이미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활동지 구성도 중요합니다. 저는 아이들이 자기 이름을 쓰고, 좋아하는 색을 색종이로 골라 붙이고, 그 뒷면에 왜 그 색을 선택했는지 한 문장씩 적게 했습니다. 이 메타인지(metacognition) 과정, 즉 자신의 선택 이유를 돌아보고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은 단순한 미술 활동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입니다. 아이들이 색을 고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왜 그 색인지 스스로 설명하는 순간부터 진짜 표현이 시작됩니다.

 

계절이나 가족 소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감정 정리 등 주제를 바꿔 가며 반복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큰 장점입니다. 일반적으로 그림책 활동은 한 번 읽고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제 경험상 『이 색 다 바나나』는 주제만 달리해도 매번 새로운 대화가 나왔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구절이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색을 분류하는 활동이 아니라 색을 발견하는 경험으로 바꾸는 것, 그게 이 그림책이 주는 가장 큰 차이인 것 같습니다. 아직 이 책을 접하지 않으셨다면, 다음 수업이나 독서 활동 전에 한 번 꺼내 보시길 권합니다. 그림책이 이렇게 넓어질 수 있다는 걸 아이들이 먼저 알아챌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ZofBnoxoHY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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