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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탕 선녀님' 그림책 놀이 (도입, 읽기, 만들기, 역할 놀이)

by seulki87 2026. 4. 27.

솔직히 저는 처음에 그림책 한 권으로 수업을 꽉 채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장수탕 선녀님』을 유아들과 처음 펼쳤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반응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목욕탕이라는 친숙한 공간이 이야기의 문을 활짝 열어줬고, 수업은 제가 계획한 것보다 훨씬 풍성하게 흘러갔습니다. 이 글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그림책 놀이를 어떻게 시작하고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 풀어낸 기록입니다.

 

저자 백희나,출판 스토리보울, 발행 2024.04.04.

 

장수탕 선녀님 그림책 놀이, 도입활동: 타블로로 목욕탕 경험 끌어내기

 

그림책을 바로 펼치기 전에 아이들의 경험과 상상력을 먼저 깨워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아무 준비 없이 책부터 읽으면 아이들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오는 데 시간이 꽤 걸립니다. 그래서 저는 '타블로' 활동으로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타블로(Tableau)란 연극 교육에서 활용하는 기법으로, 참여자들이 말없이 몸의 정지 동작만으로 특정 장면이나 상황을 표현하는 활동입니다. 쉽게 말해 '살아있는 조각상 만들기'라고 보시면 됩니다. 두세 명이 앞에 나와 선생님이 제시하는 장소 카드를 보고 "하나, 둘, 셋" 신호에 맞춰 각자 상의 없이 그 공간에 어울리는 동작을 취하는 방식입니다.

 

교실, 놀이터, 마트, 커피숍 같이 아이들에게 익숙한 공간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에 '목욕탕' 카드를 꺼냈을 때 반응이 살아납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앞서 나온 장소들로 몸을 풀어둔 상태에서 목욕탕이 등장하면 아이들이 훨씬 더 자유롭게 동작을 쏟아냅니다. 누군가는 탕 안에 들어가 앉는 흉내를 내고, 누군가는 때를 미는 동작을 하고, 또 누군가는 머리에 수건을 두르는 포즈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타블로 이후에는 목욕탕에서 경험한 것들을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시간을 짧게 가졌습니다. "목욕탕에 가면 뭐가 있어?" 한 마디에 아이들 입이 열리기 시작하면, 그다음은 그림책이 자연스럽게 이어받습니다.

 

그림책 읽기: 표지 가리기로 상상력 자극하기

 

『장수탕 선녀님』은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입니다. 오래된 동네 목욕탕 '장수탕'에 엄마를 따라 온 아이 덕지가 냉탕에서 신기한 선녀 할머니를 만나 함께 노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장수탕'의 '장수'는 오래 산다는 의미의 장수(長壽)로, 목욕탕 이름 자체에 이미 이야기의 맥락이 담겨 있습니다.

 

그림책을 처음 꺼낼 때 저는 표지의 선녀님 얼굴 부분을 살짝 가려 두었습니다. 이것이 생각보다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하얀 머리카락, 요구르트를 마시는 손, 드러난 살갗만 보고도 아이들은 "나이가 많은 할머니다", "머리가 하얀 선녀님이에요"라며 자기만의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책을 본 아이들은 기억 속 선녀님 표정을 따라지어 보기도 했습니다.

 

이 활동은 그림책 교육에서 말하는 '예측적 읽기(predictive reading)' 전략과 맞닿아 있습니다. 예측적 읽기란 독자가 이야기 전개를 미리 상상하면서 읽는 방식으로, 아이들의 읽기 몰입도와 이해력을 함께 높여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 경험상 표지 가리기 하나만으로도 아이들의 집중도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그림책을 함께 읽는 동안 아이들은 냉탕과 열탕이 번갈아 등장하는 장면, 덕지와 선녀님이 냉탕에서 장난치는 장면에서 특히 크게 웃었습니다. "나도 목욕탕 가 봤어요", "뜨거운 물은 조금 무서워요"라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왔고, 그 순간 이야기와 아이들의 삶이 연결되는 게 느껴졌습니다. 유아 문학교육에서 이야기와 개인 경험의 연결을 '텍스트-자기 연결(text-to-self connection)'이라고 합니다. 텍스트-자기 연결이란 독자가 이야기 속 사건이나 인물을 자신의 경험과 연결 짓는 과정으로, 읽기 이해를 깊게 하는 핵심 전략 중 하나입니다(출처: 한국어린이문학교육학회).

 

머리띠 만들기: 만들기 활동으로 이야기를 몸에 입히기

 

그림책 읽기가 끝난 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확장 활동이 바로 선녀 머리띠 만들기입니다. 단순한 미술 활동처럼 보이지만, 완성된 머리띠를 직접 쓰고 선녀님 표정을 따라 짓는 순간 아이들의 눈빛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재료는 문구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로 충분합니다.

  • 플라스틱 머리띠 (다양한 색상 선택 가능)
  • 털 모루 (한 봉지에 여러 색이 들어있는 제품)
  • 보석 체인 또는 리본 줄 (민자형, 알 박힌 형 등 취향에 따라)
  • 글루건 (교사가 직접 조작)

만들기 순서는 털 모루 두 가닥을 꼬아 풀어지지 않게 한 뒤 머리띠 위에 감아 고리 모양을 만들고, 글루건으로 단단히 고정합니다. 이후 보석 체인이나 리본으로 꾸미는 방식입니다. 글루건은 뜨거워 아이들이 직접 사용하면 위험하니 반드시 교사가 조작하는 것이 맞습니다. 제가 직접 해보면서 느낀 건, 고정 단계만 교사가 담당하고 꾸미기는 아이들에게 전적으로 맡기면 참여감이 훨씬 올라간다는 점이었습니다.

 

남자아이들 중에는 선녀 머리띠보다는 왕관, 별 모양, 자동차 장식 같은 형태로 모루를 활용하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방향을 충분히 허용해 드리길 권합니다. 만들기 과정 자체가 이야기와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형태보다는 아이가 즐겁게 참여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완성 후에는 목욕탕 타일 무늬 시트지를 붙인 폼 판 앞에서 요구르트를 들고 선녀님 표정을 따라 짓는 사진을 찍어 줬습니다. 아이들이 그 사진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단순한 만들기로 끝나지 않고 하나의 장면으로 완성되는 경험이 아이들에게 오래 남는다는 걸 그때 다시 확인했습니다.

 

역할 놀이: 목욕탕을 교실로 옮겨 오기

제가 생각하는 이 그림책의 진짜 활용 가치는 역할놀이(dramatic play)에 있습니다. 역할놀이란 아이들이 이야기 속 인물이나 상황을 직접 몸으로 연기하며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놀이 형태로, 언어 발달과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을 동시에 자극하는 활동입니다.

교실 한쪽을 목욕탕처럼 꾸미는 것이 핵심입니다. 거창하게 준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수건과 바구니만 있어도 충분히 목욕탕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아이들은 손님이 되기도 하고, 때를 밀어 주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선녀님이 되어 냉탕에서 장난을 치기도 했습니다. 어떤 아이는 수건을 머리 위에 올려 양머리 모양을 만들더니 그림책 속 장면 그대로를 재현하기도 했습니다.

 

유아기의 역할놀이는 단순한 흉내 내기가 아닙니다. 유아교육 분야에서는 이 시기의 극화 놀이(dramatic play)를 사회적 역할 이해, 감정 조절, 협력 능력 발달과 직결된 핵심 활동으로 봅니다. 실제로 놀이 중심 교육과정을 강조하는 2019 개정 누리과정에서도 유아의 자발적 놀이를 통한 배움을 학습의 핵심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출처: 교육부 누리과정 포털).

 

제가 경험한 바로는 역할놀이 중 아이들의 언어 표현이 가장 풍부해졌습니다. 그림책에서 봤던 말과 행동이 놀이 안에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오고, 친구들과 역할을 나누며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상상력과 사회적 상호작용이 놀이 안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장수탕 선녀님』은 결국 목욕탕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을 통해 세대 간의 교감과 상상력의 확장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그림책입니다. 도입활동부터 역할놀이까지 흐름을 이어가면, 아이들은 그림책 한 권을 읽는 것을 넘어 그 이야기를 살아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유아들의 일상과 맞닿은 그림책을 고를 때, 그리고 어떻게 확장할지 막막할 때 이 흐름이 하나의 기준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thyQqowZBZM&list=PLYL5HwiWwpBJx8DUDqZ_fbmYC_bHdqH1_&index=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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