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준비를 하다 보면 "오늘은 뭘 해줘야 하지?" 하는 막막함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재료는 마땅치 않고, 시간도 촉박하고, 아이들 눈빛은 벌써 "오늘도 그거예요?" 하는 분위기일 때. 저도 그런 날이 많았는데, 어느 날 서랍에서 꺼낸 종이 한 장이 그 문제를 꽤 오래 해결해 주었습니다. 박정선 글, 민정형 그림의 그림책 『종이 한 장』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종이 한 장 그림책 놀이, 종이 한 장으로 시작하는 탐색 활동
『종이 한 장』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이가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쓰일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그림책입니다. 바람을 일으키고, 소리를 전달하고, 비행기가 되고, 컵이 되는 이야기들이 차례차례 펼쳐집니다. 처음 이 그림책을 접했을 때 저도 "이걸로 수업을 어떻게 끌어가지?" 싶었는데, 막상 아이들에게 종이 한 장을 쥐여 주고 "이걸로 뭘 할 수 있을 것 같아?" 하고 물어보니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빠르게 교실이 살아났습니다.
그림책을 읽기 전에 사전 탐색 활동(pre-exploration activity)을 먼저 진행해 보시길 권합니다. 사전 탐색 활동이란 책의 내용을 읽기 전에 유아 스스로 재료나 주제를 자유롭게 경험하게 하는 과정으로, 이후 그림책 내용과 자신의 경험을 연결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제가 직접 해봤는데, 책을 먼저 읽어준 날보다 종이를 먼저 주고 탐색하게 한 뒤 책을 꺼냈을 때 아이들의 반응이 훨씬 풍부했습니다. "아, 이건 나도 해봤는데!" 하는 공명(resonance)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저희 반 아이들은 종이를 받자마자 각자 다른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위아래로 흔들어 바람을 만드는 아이, 양손으로 잡고 팽팽하게 당겨보는 아이, 작게 구겨서 던지는 아이. 그 모습들이 나중에 그림책 내용과 맞아떨어질 때 아이들 눈이 반짝이는 게 보였습니다. 그 순간을 경험하고 나서는 이 그림책을 단순한 도입 자료가 아니라 놀이 설계의 중심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그림책 본문에서 다루는 종이 활용 장면들을 놀이로 연결하면 다음과 같이 구성할 수 있습니다.
- 종이를 흔들어 약한 바람, 강한 바람 만들어 보기
- 둥글게 말아서 소리를 증폭시켜 보기 (즉석 스피커 역할)
- 종이비행기를 접어 목표 지점에 착륙시키는 놀이
- 종이컵 접기 후 물을 담아 얼마나 버티는지 실험하기
- 종이 한 장으로 가장 긴 뱀 또는 국수 모양 만들기 (손으로 찢기)
이 중 아이들이 가장 열띠게 했던 건 역시 '가장 긴 뱀 만들기'였습니다. 규칙은 단순합니다. 종이를 찢어서 이어 붙이지 않고 한 장에서 가능한 한 길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경쟁하듯 찢어나가면서 "내 게 더 길어!" 하고 소리치는 그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종이 한 장이 확장되는 순간
그림책 활동이 끝난 뒤가 사실 더 중요합니다. 제 경험상, 아이들의 창의성은 정해진 결과물을 만들 때보다 "이렇게도 되네?"를 발견하는 순간에 훨씬 크게 발휘됩니다. 그래서 저는 접기 활동 이후에 반드시 자유 탐색 시간을 추가로 두었습니다.
이 그림책 놀이에서 특히 좋았던 활동 중 하나는 A4 용지 한 장으로 몸을 통과시키는 큰 구멍 만들기입니다. 방법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종이를 반으로 접은 뒤 다시 접기를 반복하고, 접힌 선을 따라 지그재그로 가위질한 다음 가운데 접힌 부분을 잘라내면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크기의 고리가 만들어집니다. 아이들에게 처음 이걸 보여줬을 때 반응이 정말 좋았습니다. "이게 진짜 돼요?"라고 눈을 크게 뜨던 그 표정은 솔직히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유아 교육 분야에서 이런 활동 방식은 구성주의적 놀이(constructive play)와 맞닿아 있습니다. 구성주의적 놀이란 유아가 재료를 직접 조작하고 변형하면서 개념을 스스로 구성해 나가는 놀이 유형을 말합니다. 단순히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왜?", "어떻게?"를 경험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실제로 유아기의 구성주의적 활동이 수학적 사고와 공간 지각 능력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출처: 한국유아교육학회).
종이옷 만들기 활동도 빠질 수 없습니다. 전지 크기의 종이를 아이들 몸에 맞춰 접고 오려 내면 실제로 입고 다닐 수 있는 종이옷이 완성됩니다. 제가 직접 해봤는데, 아이들이 자기가 만든 옷을 입고 역할놀이로 이어가는 게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습니다. 옷의 깃을 어떻게 오리느냐에 따라 디자인이 달라지고, 서로의 옷을 보며 "나는 반팔로 만들었어", "나는 소매 달았어" 하고 이야기하는 시간 자체가 언어 발달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상호작용이었습니다.
표현력과 창의성 발달을 위한 조형 활동(plastic art activity)의 중요성은 누리과정에서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조형 활동이란 재료를 이용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활동 전반을 가리킵니다. 누리과정 예술경험 영역에서는 유아가 다양한 재료로 표현해 보는 경험을 통해 창의적 표현 능력을 기른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출처: 교육부 누리과정).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오늘 경험한 것을 종이 한 장으로 만든 작은 책에 기록하게 하는 활동으로 마무리하면 좋습니다. 직접 경험한 것을 그림이나 글로 정리하는 과정이 메타인지(metacognition), 즉 자신의 학습 과정을 스스로 인식하고 돌아보는 능력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종이 한 장이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놀랍습니다. 재료 준비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면, 일단 종이 한 장부터 꺼내 보시기 바랍니다. 아이들 손에 쥐여 주고 "이걸로 뭘 해볼까?" 한 마디만 해도, 그다음은 아이들이 알아서 끌어갑니다. 저도 그 순간을 경험한 뒤로는 수업 전 재료 고민이 훨씬 줄었습니다. 처음엔 단순해 보이는 그림책 하나가 생각보다 오래, 다양하게 쓰인다는 걸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9I5p4KQUmY&list=PLYL5HwiWwpBJx8DUDqZ_fbmYC_bHdqH1_&index=33&t=1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