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왜 왕은 혼자 남았어요?"라고 물었을 때, 저는 솔직히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림책 한 권이 이렇게 날카로운 질문을 끌어낼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범재 작가의 『혼자 남은 착한왕』은 단순한 교훈 그림책이 아니라, 아이들이 관계와 배려의 의미를 스스로 발견하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혼자 남은 착한왕 그림책 놀이, 그림책 속 '착함'의 기준, 어른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그림책은 착함과 나쁨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교훈을 전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혼자 남은 착한왕』은 그 기준 자체를 흔들어 놓습니다. 제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왕이 착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들이 서태지, 아인슈타인, 마이클 잭슨, 스티브 잡스, 모차르트라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우리가 위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왕의 기준에서는 추방 대상이 되었다는 설정이, 아이들보다 오히려 어른에게 더 깊은 질문을 던진다고 느꼈습니다.
여기서 이 그림책이 활용하는 핵심 장치는 관점 충돌(perspective conflict)입니다. 관점 충돌이란 서로 다른 입장이 부딪히는 상황을 통해 독자 스스로 가치 판단을 하도록 유도하는 서사 기법으로, 단순한 선악 구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사고를 요구합니다. 어린이가 왕의 선택을 보며 "저건 이상한 거 아닌가요?"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가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판적 사고란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뜻하며, 유아기부터 꾸준히 길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합니다.
유아기 사회·정서 발달(social-emotional development) 측면에서도 이 책은 매우 효과적입니다. 사회·정서 발달이란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이 자라는 과정을 말합니다. 교육부가 고시한 2019 개정 누리과정에서도 유아의 사회·정서 발달을 핵심 영역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그림책 읽기는 이 발달을 지원하는 대표적인 매체로 제안됩니다(출처: 교육부 누리과정 포털).
이 책이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건네는 질문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착한 것과 착하지 않은 것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 나와 다른 것을 없애면 진짜 좋은 세상이 될까
- 혼자 남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 세 가지 질문은 아이들이 수준에 맞게 자신의 언어로 답할 수 있고, 그 대화 자체가 이미 공감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 됩니다.
역할놀이로 확장하면 달라지는 것들, 제가 직접 해봤습니다
유아교육 현장에서 그림책 독후 활동은 독후감 쓰기나 단순 질문 답하기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역할놀이(role play)로 연결될 때 아이들의 반응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역할놀이란 아이가 특정 인물의 입장이 되어 행동하고 대화하는 놀이 형태로, 감정 이입과 상황 이해를 동시에 촉진하는 상호작용 활동입니다.
저도 이 그림책을 읽고 나서 아이들과 왕 역할과 마을 사람 역할로 나누어 놀이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예상 밖의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왕 역할을 맡은 아이가 처음에는 "이건 착하지 않으니까 나가!"라고 했다가, 마을이 점점 비어가자 스스로 "같이 놀자"라고 말을 바꾼 것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아이 스스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간 것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을 사람 역할을 맡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함께 나누면 좋아요"라고 말하며 놀이를 이어 가는 모습에서, 공감 능력(empathy)이 언어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공감 능력이란 타인의 감정과 상황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고 이해하는 심리적 역량으로, 연구에 따르면 유아기에 충분한 사회적 놀이 경험을 가진 아이일수록 공감 능력 발달이 빠릅니다(출처: 한국아동학회).
저는 역할놀이 이후 '함께 하면 좋은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활동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친구와 블록 놀이를 하는 장면, 가족과 밥을 먹는 장면을 그리며 "혼자보다 같이 하는 게 좋아요"라고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 그림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설명이 아닌 경험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림책을 활용한 역할놀이를 준비할 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역할을 정하기 전에 책을 두 번 읽는다. 처음은 이야기 파악, 두 번째는 인물 감정에 집중한다.
- 역할을 강제 배정하지 않고, 아이가 선택하도록 한다. 선택 자체가 자율성을 기르는 과정이다.
- 놀이 중 교사가 개입하기보다 관찰하며 아이의 언어를 기록해 둔다. 이후 피드백 대화에서 그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면 아이의 몰입도가 높아진다.
- 역할놀이 후에는 반드시 디브리핑(debriefing)을 짧게 진행한다. 디브리핑이란 활동 이후 느낌과 생각을 함께 이야기하며 경험을 정리하는 과정으로, 학습의 내면화를 돕습니다.
그림책 한 권이 역할놀이, 그림 표현, 대화까지 이어지는 연속적인 활동으로 확장되는 경험은, 저에게도 매번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혼자 남은 착한왕』은 단지 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 아닙니다. 내가 정한 기준이 얼마나 좁을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들과 이 책을 읽고 난 뒤 대화 한 번, 역할놀이 한 번만 해 봐도, 그 가치가 충분히 전달됩니다. 어떤 그림책을 다음에 골라야 할지 고민이라면, 한 번쯤 아이에게 질문을 돌려주는 책을 선택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EOfKbWu-gV4&list=PL8WrQ8pZVX9gJMZCq4CeQU7YN2jjy1Tk5&index=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