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환상그림책을 활용한 토의활동 (언어능력, 실제)

by seulki87 2026. 6. 4.

하나의 주제에 대하여 함께 의논하는 것

 

 

토의활동을 병행한 실험집단 유아들이 그림책만 읽은 집단보다 언어능력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를 보였습니다(F=51.688, p <. 001). 이 수치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예상보다 격차가 컸습니다. 단순히 책을 읽어주는 것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 사이에 이 정도 차이가 생긴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환상그림책이 언어능력에 미치는 영향

 

환상그림책(Fantasy Picture Book)이란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초자연적, 마술적 세계를 다루되, 비논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 뿌리를 두고 논리적 일관성을 갖춘 플롯으로 구성된 문학입니다. 쉽게 말해, 하늘을 나는 고래나 말을 하는 돌멩이가 나오더라도 그 이야기 안에서는 나름의 규칙과 인과관계가 있는 구조입니다.

 

연구에서는 만 5세 유아 40명을 대상으로 8주간 실험 처치를 진행했습니다. 실험집단은 주 2회씩 환상그림책을 읽고 토의활동을 함께 진행했고, 통제집단은 동일한 책을 그냥 읽어주기만 했습니다. 사전·사후 점수 차이를 분석하는 데는 공변량 분석(ANCOVA)을 활용했습니다. 여기서 ANCOVA란 사전 점수처럼 두 집단 사이에 이미 존재하는 차이를 통계적으로 제거한 뒤 순수한 처치 효과만을 비교하는 방법입니다.

 

결과를 보면 어휘력(Vocabulary)과 언어표현력(Language Expression)에서 두 집단 간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고, 특히 언어표현력은 내용의 일치도, 문장 수, 문장 길이 모두에서 실험집단이 앞섰습니다. 반면 언어이해력(Language Comprehension)은 유의한 차이가 없었습니다(F=0.003, p=. 956). 이 부분은 저도 조금 의외였는데, 언어이해력은 단순 읽기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이 되기 때문에 토의 유무가 크게 변수가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제가 직접 현장에서 경험한 것도 비슷했습니다. 유아들에게 그냥 그림책을 읽어줄 때와, 읽은 후 "이 장면에서 주인공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고 물어봤을 때 아이들의 반응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토의를 하면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더 긴 문장을 쓰고, 더 다양한 단어를 끌어왔습니다.

 

토의활동을 통해 언어능력이 발달하는 과정은 비고츠키의 사회적 상호작용 이론(Sociocultural Theory)으로 설명됩니다. 이 이론은 인간의 언어와 사고가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달한다는 관점으로, 유아가 친구나 교사와 대화하면서 혼자서는 도달하지 못했을 사고 수준까지 끌어올려진다는 개념입니다. 환상그림책이 그 상호작용의 '불씨' 역할을 한다고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출처: 한국어린이교육문화연구원).

 

핵심 포인트:

  • 어휘력과 언어표현력은 토의활동에서 유의하게 향상됨
  • 언어이해력은 단순 읽기만으로도 자극이 되어 집단 간 차이 없음
  • 문장 수, 문장 길이, 내용 일치도 세 항목 모두 실험집단 우세
  • 공변량 분석(ANCOVA)으로 사전 점수 차이를 제거하고 순수 효과 측정

 

상상력 발달과 토의활동의 실제

 

상상력 검사에서도 실험집단이 통제집단보다 유의하게 높은 점수를 기록했습니다(F=16.890, p<.001). 상상력 측정에 사용된 K-CCTYC(유아용 종합 창의성검사)의 하위 항목은 점 완성하기, 선 완성하기, 도형 구성하기처럼 시각적 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K-CCTYC란 유아의 창의성을 다양한 비언어적 과제를 통해 측정하도록 설계된 검사 도구로, 상상력을 포함한 여러 창의성 하위 영역을 별도로 평가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상상력이 단순히 그림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자극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은 뒤 "그다음엔 어떻게 됐을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말로 풀어내는 과정이 추가됐을 때 비로소 상상력도 함께 뻗어나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이야기를 시사합니다. 유아들은 혼자 생각할 때보다 친구의 엉뚱한 아이디어를 들을 때 오히려 더 기발한 방향으로 사고를 전환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 번은 마법사가 등장하는 그림책을 읽고 "나에게 마법이 생긴다면?"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한 아이가 "친구들을 모두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요"라고 하자 옆에 있던 아이가 갑자기 "그럼 저는 공룡을 불러서 같이 여행 가고 싶어요"라고 했습니다. 그 직후 첫 번째 아이는 "그럼 저도 공룡이랑 친구를 다 같이 행복하게 해 줄게요"라고 자기 생각을 확장시켰습니다. 이 짧은 교환 하나가 바로 상상력과 언어표현력이 동시에 작동하는 장면이라고 느꼈습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연구에서 한 가지 전제를 더 생각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토의활동의 질은 교사가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입니다. 유아들에게 "이 이야기의 교훈이 뭐야?"처럼 정답을 유도하는 질문을 던지면, 아이들은 상상하는 대신 '맞는 말'을 찾으려고 합니다. 반대로 "만약 네가 주인공이라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 같아?"처럼 열린 질문을 사용하면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교사의 역할이 단순한 진행자가 아니라 사고를 확장시키는 촉진자여야 한다는 점은 현장에서도 늘 실감하는 부분입니다.

 

유아교육 분야에서 그림책을 활용한 언어교육의 중요성은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에서도 강조되고 있습니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공동 고시한 누리과정(2019 개정)에서는 의사소통 영역 목표 중 하나로 "말과 글의 관계에 관심을 가진다"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는다"를 명시하고 있으며, 이는 토의활동의 방향성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출처: 교육부 누리과정).

 

환상그림책을 교실에서 잘 활용하기 위해 고려할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의인화(Anthropomorphism)된 인물이 등장하거나 시간·공간의 제약이 없는 이야기 구조가 유아의 상상력을 더 자극함
  • 권선징악처럼 교훈을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그림책보다 결말이 열린 이야기가 토의에 적합함
  • 교사는 정답 유도형 질문보다 열린 질문(Open-ended Question)을 사용해야 효과가 극대화됨

제가 직접 써봤는데, 책 선정 기준 하나만 바꿔도 토의 시간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교훈이 명확한 책은 아이들이 금방 "착하게 살아야 해요"로 수렴하고 이야기를 닫아버리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반면 결말이 열려 있거나 주인공의 선택이 모호한 이야기는 아이들이 서로 다른 해석을 들고 나왔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풍부한 언어적 상호작용이 이루어졌습니다.

 

환상그림책과 토의활동의 조합이 단순한 보조 자료를 넘어 하나의 교수방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근거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다만 어떤 방법이든 교사의 준비와 질문 설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절반의 효과에 그칠 수 있다는 점, 현장에서 일하면서 늘 느끼는 부분입니다. 책 한 권을 고르는 것보다 그 책으로 무엇을 물어볼지 미리 생각해두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내일 그림책 시간을 앞두고 있다면, 열린 질문 하나를 먼저 준비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dcollection.skku.edu/public_resource/pdf/000000022200_20260604170547.pdf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